주일설교영상

2021-04-04 08:56:08

노창영 목사
나사로의 부활 강해(Ⅰ):병,지체,그리고 잠

본문 말씀 : 요한복음 11:1-16

제목: 나사로의 부활 강해본문: 요한복음 11:1-16 설교자: 노창영목사

서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평강이 성도들 위에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신약성경복음서에는 예수님께서 죽음 가운데 다시 살리신 세 명의 인물이 나옵니다. 첫 번째는 회당장 야이로의 열두살 된 딸이며, 두 번째는 나인성 과부의 아들입니다. 마지막사람은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세 명의 부활 사건을 통하여, 예수님 자신이 부활의 능력을 가진 전능자 하나님이심을 보여주십니다. 그중에서 가장 자세한 부활의 기록이 나사로의 부활사건이며 그 안에는 기독교적 죽음, 종말, 소망의 신학이 담겨있습니다. 요한복음11장에 나타난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앞으로 세 주간 동안 강해하려고 합니다.

. 먼저, 병든 나사로에 대하여 상고합시다(11:1-5)

A.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에 대하여

성경에는 나사로라는 이름의 인물이 두 명 등장 합니다. 한 명은 거지 나사로(16:20)이며, 다른 한명은 본문에 등장한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입니다. 본문에 등장하는 나사로는 마르다와 마리아와 남매지간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삼남매를 사랑하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3,5). 이들은 항상 예수님을 극진히 접대하였고, 섬겼으며, 예수님과 교통하였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사로를 향하여 친구라고 말씀하셨습니다(11). 나사로는 덕망이 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나중에 나사로가 죽었을 때 많은 사람들이 조문을 하였고, 눈물을 흘렸으며(33) 예수님께서도 눈물을 흘리셨습니다(35).

B. 나사로의 병과 죽음

병과 죽음의 상관관계

모든 사람은 병을 가지고 살아갑니다. 평생에 한 번도 병에 걸리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찰과상, 감기, 소화불량 같은 가벼운 질병에서부터 암, 에이즈, 뇌졸중, 심근경색 같은 치명적인 질병까지 병은 사람들로 하여금 정상적인 삶을 힘들게 만듭니다. 또한 질병은 통증을 유발합니다. 질병의 통증은 사람들로 하여금 극단적 생각을 떠올리게 할 만큼 정신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통증은 육체적 질병으로 인하여 발생하는 것 외에도, 신경, 정신, 마음, 정서, 영적인 문제로 인해 발생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성경은 병과 죽음을 같은 차원에서 표현합니다. 요한계시록21:4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합니다. 천국에는 병원, 의사, 장의사가 없습니다. 사망과 애통하고 곡하는 것은 이 땅에서 연약한 몸을 가진 인간의 질병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노환이라는 일반적인 표현은 의학적인 용어는 아닙니다. 의학적 관점에서 노안은 나이가 들었다고 자연히 죽는 것이 아니라, 병이 들어서 죽는 것입니다. 장기의 손상이나 퇴화 같은 신체적 질병으로 인하여 죽는 것입니다. 결국 사람은 병으로 인해 죽는 것입니다.

나사로의 병과 죽음

나사로는 왜 죽었을까요? 나사로의 병은, 죽을 병이었습니다. 나사로가 베다니에서 죽을 병에 걸려 있을 때 예수님께서는 베다니에서 30~40Km정도 떨어진 요단강근처에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요단강에 계신다는 소식을 들은 나사로의 누이들은 예수님께 사람을 보냈습니다. 마르다와 마리아가 병든 나사로를 살려 달라고 예수님께 요청한 것입니다. 누이들이 사람을 보낸 것은 나사로가 위독했기 때문이요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린 것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4a).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죽을 병이 아니라는 말씀은 인간적 관점이 아니라 영적인 관점에서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시는 병과 죽음에 대한 관점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 차이가 있습니다. 나사로의 병은 죽을 병이 맞습니다. 인간적, 의학적 관점에서 나사로의 병은 죽을 병이었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능력의 주님이신 예수님께는 죽을 병이 아니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사로의 병든 소식을 들으셨으나 요단강지역에서 이틀을 더 머무르셨으며 얼마뒤에 나사로가 죽었습니다. 나사로는 죽을 병으로 인하여 죽었습니다.

C. 예수님께서 사랑하는 사람도 병이 들 수 있다는 가르침에 대하여(11:3)

마르다와 마리아가 나사로가 병이 들었다고 급히 사람을 예수님께 보낸 사건은 예수님의 사랑받는 사람에게도 병이 걸릴 수 있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보통 믿음의 사람들은 마르다와 마리아 같이 예수님을 잘 믿으면 사랑하는 가족들이 고난이 없고. 건강하며, 잘 살아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하나님께서 때로는 특별한 은총으로 믿음의 사람들에게 건강과 부와 명예를 주시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믿으면 모두 다 건강하고, 예수님을 믿으면 평안하게 잘 살 것이라는 생각은 잘못된 생각입니다. 예수님을 잘 믿어도 병과 고난과 재앙이 옵니다. 때로는 죽기도 합니다. 히브리서9:27에 사람이 죽는 것은 당연한 이치라고 말씀합니다.

영국교회의 설교의 황태자라고 불리는 찰스 해돈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목사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일상적인 필요와 연약함에서 부터 제외시키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사람도 사람이다. 은혜의 언약이 우리를 폐병, 류마티스, 감기와 같은 질병으로부터 면제시켜주는 헌장이 아니다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우리는 마르다와 마리아처럼 예수님의 사랑하시는 사람이 병들거나 죽었을 때 왜 사랑하는 사람이 이런 고통을 받는지 의아해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해도 사람들은 병에 걸리기도 하고 죽기도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의 삶 속에도 아픔과 고통이 찾아옵니다. 기도의 사람 히스기야대왕은 의와 공의와 진실로 국가를 통치하였고, 성전예배를 부활시켰고, 성전을 수리하였으며, 기도로 앗수르대군을 물리쳤던 성군입니다. 그런 히스기야왕도 중년에 죽을 병에 걸립니다. 당대에 순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을 떠난 의인이었던 욥의 삶은 어떻습니까? 욥 또한 죽을 병에 걸립니다. 뿐만 아니라 물질적손실, 질병, 관계의 파괴, 극심한 정신적 고통과 고난으로 삶이 일그러집니다. 고린도후서12장에 사도 바울은 자신의 질병에 대하여 이야기 합니다. 사도 바울의 질병이 무엇인지는 성경에 언급되어 있지 않지만 안질이나 간질 같은 병으로 일평생 시달렸던 것으로 보입니다. 성경은 이것이 내게서 떠나기 위하여 내가 세 번 주께 간구하였더니 내게 이르시기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고후12:8-9). 위대한 사도바울도 질병에서 자유하지 못했습니다. 물론 믿음의 사람들은 수많은 질병, 그리고 때로 죽을 병에 걸렸을 때 치료를 위해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믿고 나아가야합니다(8:28). 시편119:71고난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인하여 내가 주의 율례를 배우게 되었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분명한 것은, 믿음의 사람들은 하나님의 때가 아니면 절대로 죽지 않는 다는 사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병든 소식을 들으시고 계시던 곳에서 이틀을 더 머무르신 뒤에 베다니로 출발하셨습니다. 그런데 베다니에서 가까운 예루살렘성에 있는 유대인들은 예수님을 죽이려고 모의를 하고 있었습니다. 제자들은 이 상황을 걱정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을 향하여 낮이 열두시가 아니냐 사람이 낮에 다니면 이 세상의 빛을 보므로 실족하지 아니하고”(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목숨이 위험한 상황이라도 지금은 일을 해야하는 낮의 때이므로 아무리 위험해도 죽지 않을 것이므로 그리로 가자고 명령하십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생명을 주님께 맡기고 나아가야 합니다.

. 예수님께서 죽을 병든 나사로를 이틀이나 늦게 지체하여 찾아가신 이유를 살펴봅시다(6-10, 14-16)

A.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나사로의 죽음

예수님께서는 병든 나사로에게 일찍 가실 수도 있었습니다. 보통 사랑하는 사람이 위독하면 우리는 급히 그에게로 찾아갑니다. 이것이 가족이요 친구입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일부러 이틀을 지체하시면서 늦게 나사로를 찾아 가십니다. 나사로가 죽고 나서 베다니에 늦게 찾아오신 예수님께 마르다와 마리아는 주께서 여기 계셨더면 내 오라비가 죽지 아니하였겠나이다”(21)라고 말합니다. 마르다와 마리아는 예수님을 잘못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자리에 없으셔도 능히 치료하거나 살리실 수 있는 전능의 하나님이십니다. 그렇다면 왜 예수님께서는 요단강근처에 이틀이나 더 지체하시다 나사로를 찾아오셨을까요? 예수님께서는 정확한 하나님의 계획과 영광을 위하여 이틀을 지체하셨습니다. 이때 예수님께서는 세례요한이 처음 세례를 베풀던 요단강근처에 계셨습니다. 정확한 위치는 알 수 없지만 베다니로부터 예수님께서 계셨던 요단강까지는 대략 약32-40km, 혹 그 이상으로 보입니다. 이는 당시 어른이 하루를 쉬지 않고 꼬박 걸어가야 도착할 수 있는 거리였습니다. 예수님께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전달하는데만 꼬박 하루가 걸렸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틀을 더 계시던 곳에서 머무르셨습니다. 그렇다면 나사로의 병든 소식을 들으시고 3~4일이 지난 상황입니다. 게다가 예수님께서 계신 곳에서 베다니로 쉬지 않고 가신다면 꼬박 하루가 걸릴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찾아 가셨을 때, 나사로는 죽은 지 이미 나흘(4)이 지났다라고 성경은 이야기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시고 더 지체하여 늦게 나사로를 찾아가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정확한 계획과 목적을 위하여, 늦게 나사로를 찾아가셨습니다. 4절에 이 병은 죽을 병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이요 하나님의 아들로 이를 인하여 영광을 얻게 하려함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죽은 나사로를 부활시키실 놀라운 역사를 예측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을 병에 걸렸지만 다시 부활할 것이기에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나사로의 병과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영광 받으시고 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 되심이 영광스럽게 드러나게 될 것임을 말씀하셨습니다. 14-15절에 보면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죽는 그 장소에 계시지 않으셨음을 기뻐하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이는 모순처럼 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랑하는 자가 병들어 있는 상황에서 그와 함께 있지 못한 것이 기쁘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매우 의아하게 여길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친구의 죽음을 기뻐하셨다면 너무 인간미가 없어 보입니다. 그러나 이 말씀은 나사로의 부활을 예고하시는 말씀입니다. 나사로의 죽음은 예수님의 부활의 능력을 나타내는 반증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이 부활로 바뀔 것이요, 마침내 이 사건으로 더욱 크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실 것을 기뻐하셨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나사로의 부활로 인해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게 되었습니다. 만약 나사로가 죽지 않고 병 고침을 받았더라면 나사로와 마르다와 마리아는 그저 마냥 행복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베다니지역과 유대의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 역사는 일어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을 통해 많은 이들이 부활의 소망과 믿음을 갖게 될 것을 생각하시며 기뻐하신 것입니다.

B. 불행에서 소망을 주시는 하나님의 역사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불행과 고통스러운 삶을 영광의 삶으로 바꾸어 주시는 드라마틱한 역사의 반전을 보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은 예수님을 믿는 많은 사람들에게는 슬픔이자, 고통이며, 아픔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십자가 사건은 부활의 역사가 나타나고 인류의 구원이 이루어지는 반전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의 개입과 역사가 지체되고 더딘 것 같아도 하나님께서는 정확한 시간에 역사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 나사로의 사건에서 우리는 이 같은 진리를 볼 수 있습니다. 사도행전12장에 보면 예수님의 열 두제자중 하나인 야고보의 순교가 기록됩니다. 헤롯이 백성들이 이를 보고 즐거워하는 모습을 보면서 베드로도 죽이려고 잡아 옥에 가둡니다. 베드로를 위하여 온 교회가 기도합니다. 옥에 같힌 베드로는 하루가 지나면 죽게 되어 있었습니다. 죽기 전날 밤에 베드로는 손과 발은 쇠사슬에 묶여 있었습니다. 그리고 4명의 군사들이 4패로 베드로를 지키고 있었습니다. 심지어는 군사 2명이 베드로 옆에서 같이 있습니다. 출입하는 통로에 1파수, 2파수와 쇠대문까지 병사들이 지키고 있습니다. 이제 아침이 되면 베드로는 죽게 됩니다. 어떤 변화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죽기 전 날 밤에 천사가 베드로에게 나타납니다. 베드로를 결박하고 있던 사슬이 풀리고, 옥문들이 열립니다. 베드로는 1,2파수를 지나 쇠대문을 지나 거리로 나와 성도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소망이 없는 상황에서 극심한 고난가운데에도 기적을 베풀어 주시는 분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성도들의 불행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자리임을 기억하며 믿음 생활을 해야 합니다.

. 마지막으로 예수님께서 보신 죽음의 관점에 대하여 상고 합시다(11-14)

A. 사람들이 바라본 죽음의 관점과 예수님께서 바라보신 죽음의 관점의 차이

성경이 바라보는 병과 죽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차이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요단강 근처에서 나사로가 병들었다는 소식을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병이 죽을 병이 아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는 나사로의 병이 죽을 병이 아니었습니다. 그 후에 예수님께서는 나사로가 잠 들었고 그를 깨우러 가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 제자들은 나사로가 정말 잠든 줄 알았고, 예수님께서 병들어 잠든 나사로를 깨우러 가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잠들었다하신 말씀을 알아듣지 못한 제자들에게 실제로 나사로가 죽었다 밝히 말씀하셨습니다(14). 제자들이 보는 관점은 눈에 보이는 관점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보시는 관점은 영적인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보시는 죽음에 대한 관점은 잠자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 것을 보고 살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영적인 관점으로 죽음을 바라보시는 것입니다.

B. 잠과 죽음에 관한 말씀

성경에 기록된 죽음은 잠으로 표현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죽음은 긴 잠인 것입니다. 한번은 회당장 야이로의 열두살 된 딸이 죽었습니다. 사람들은 이 소녀의 죽음을 보며 훤화하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예수님께서는 이 소녀가 죽은 것이 아니라 잔다(5:39)라고 말씀하셨니다. 예수님의 관점에서 인간의 죽음은 잠입니다. 사도행전7:59-60에 보면 스데반 집사가 순교당해 죽을 때도 그가 자니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돌아 가셨을 때, “무덤들이 열리며 자던 성도의 몸이 많이 일어나되라고 말씀합니다(27:52). 데살로니가전서4장과 고린도전서15장에도 죽은 자를 잠자는 자로, 죽음을 잠이라고 표현합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죽음은 긴 안식에 들어가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는 잠입니다.

오늘 본문 11절에서 예수님께서 우리 친구 나사로가 잠들었도다 그러나 내가 깨우러 가노라라고 하신 말씀은 죽음을 뜻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죽음은 부활의 아침이 되면 일어나는 긴 안식의 잠인 것입니다. 인간의 죽음은 부활의 영원한 아침을 소망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을 통하여, 죽음이란 부활을 바라보는 소망의 휴식 기간임을 알려주고 계십니다. 영국의 수상이었던 윈스턴 처칠(Winston Churchill)경의 장례식은 영국 런던의 성바울대성당에서 거행되었습니다. 이 예식중에 두 번의 나팔이 울렸습니다. 처음 나팔소리는 취침나팔소리였습니다. 이 나팔소리가 끝나자, 얼마 뒤에 갑자기 크고 힘찬 기상나팔소리가 연주됩니다. 여기에 처칠경의 부활의 아침을 기다리는 신앙고백이 들어 있습니다. 죽음은 잠이요, 부활의 아침이 오면 나도 다시 깨어날 것이라는 처칠의 믿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부활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셨고, 예수님 자신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능력의 주님이심을 보여 주셨습니다.

결론// 부활의 아침을 바라보면서 죽음을 이기신 예수님을 굳건히 의지하고, 영원을 소망하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요약: 홍준기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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