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2021-09-05 11:04:20

노창영 목사
디도서강해(Ⅰ):부르심의 근거

본문 말씀 : 디도서 1:1-2

2021.9.5. 설교

제목: 디도서강해(1):부르심의 근거 본문: 디도서 1:1-2 설교자: 노창영목사

서론// 오늘부터 디도서를 강해하려고 합니다. 디도서는 세 장으로 된 짧은 책이지만 그 안에 무궁무진한 그리스도의 진리를 담고 있는 서신입니다. 바울의 여러 서신가운데 목회서신은 디모데전서, 디모데후서, 그리고 디도서 이렇게 세 권입니다. 디도서는 사도 바울이 로마 1차 감옥에서 석방된 이후 A.D.62년경 그레데섬에서 목회하는 디도에게 쓴 편지입니다. 디도의 부모는 헬라 사람들이었고, 그의 고향은 시리아 안디옥입니다. 디도는 바울의 사역을 통해 회심한 사람으로 바울의 지시를 따라 그레데섬에서 목회를 하게 된 것으로 보여집니다. 디도서는 목회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디도에게 사도 바울은 바른 교리를 분명히 가르칠 뿐 아니라 거짓 교리를 몰아내고 바른 목회자로 바로 걸어갈 수 있도록 권면과 격려의 메시지를 전달해 주고 있습니다. 디도가 목회했던 그레데섬(Crete)은 일반적으로 크레타섬으로 불리며, 고대문명의 발상지인 크레타문명으로 알려져 있는 곳이기도 합니다. 그레데는 그리스로부터 동남쪽에 떨어져 있는 길쭉하고 산이 많은 섬으로 동서의 길이는 대략 256Km, 남북의 길이는 56Km 정도입니다. 그 지역 사람들은 거짓말도 많이 하고 강팍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종 디도가 목회하는 일이 그리 쉽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이처럼 척박한 환경에서 목회하는 하나님의 종 디도에게 바울이 격려의 서신을 주고 있는 책이 바로 디도서입니다. 사람들은 이 디도서를 그 값을 매길 수 없고 필적할 것이 없는 목회신학의 교과서라고 평가합니다. 마틴 루터(M. Luther)도「디도서가 짧은 서신이지만 기독교의 진리와 삶을 포함하는 기독교 교리의 정수를 기록하고 있는 대단한 책」이라고 평가를 내렸습니다. 오늘은 디도서 강해의 첫번째로 1:1-2의 서론 부분을 함께 상고하면서 은혜 받기를 원합니다.

. 먼저, 사도바울의 자기 직분에 대한 정체성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1:1a)

사도 바울은 디도서의 서론에서 자신의 직분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자기 자신을 소개해 주고 있습니다. 그의 이름 앞에 수식된 언어들은 바울 자신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부분입니다. 우리는 사도 바울이 이 편지를 쓰면서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자기 정체성에 대한 분명한 확신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기억해야합니다.

A. 자기 명함, 자기 이력서, 자기 소개서와 자기 정체성

일반적으로 사업을 하는 분이나 직장에 다니는 분들은 보통 비즈니스카드, 즉 명함을 가지고 다닙니다. 명함에는 그 사람의 이름, 직위, 전화번호, 주소, 그리고 자신이 속한 회사나 단체 이름이 인쇄되어 있습니다. 그것을 보면 이 사람이 어떤 사람인가에 대한 그의 정체성을 대략 알 수 있습니다. 비즈니스카드는 자기 자신을 사람들에게 알리는 역할을 합니다. 명함외에도 직장이나 학교에 들어갈 때 이력서나 자기소개서를 쓰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 때도 자신을 드러내는 중요한 이력으로 자기 소개를 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이런 것들을 통해 자기 자신을 노출시켜서 상대방에게 자신이 어떤 존재인지를 각인시켜줍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 자신의 직분을 디도, 그리고 이 편지를 보는 많은 사람들에게 이렇게 소개합니다.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바울은 정확하고 분명한 자기 이해를 가지고 살았습니다. 물론 바울에게는 내세울 만한 많은 직분들, 이력들이 있던 것이 사실입니다. 빌립보서 3장을 비롯한 성경의 내용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로마시민권자라고 이야기 합니다. 로마시민권은 태어나면서 갖거나, 또는 사서 갖거나, 아니면 큰 공을 세워서 갖게 되는데 여기에는 대단히 많은 특권이 따라갑니다. 바울은 나면서부터 생득적으로 로마시민권자였기에 자신의 특권을 내세울 수 있었습니다. 또한 바울은 순수 유대 토종이었습니다. 또한 왕이 배출된 베냐민 지파 사람입니다. 그리고 난지 8일 만에 할례를 받은 순수유대 가문의 사람이기도 했습니다. 바리새파의 율법을 배운 흠이 없는 율법의 순종자였을 뿐 아니라, 당시 최고의 율법과 신학의 석학이었던 가말리엘의 제자였습니다. 대학이 있었던 길리기아 다소에서 헬라 문화과 철학을 연구했던 학자이기도 했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남 부러울 것 없이 내세울 것이 많은 사람이었지만, 그는 자신을 소개할 때 다른 모든 이력들을 뒤로하고 오직 한 가지만을 내세우고 있습니다. 바로 자신이 하나님과 그리스도에 의하여 묶인바 된 그리스도의 사람이라고 하는 단순한 사실이었습니다. 다른 모든 명함과 이력은 배설물로 여기고 그리스도안에서 발견된 자신을 강조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나 깨나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요, 그리스도의 사도였음을 절대로 망각하지 않았습니다. 평생토록 이 한 가지를 마음에 품고 살아갔던 종이 사도 바울입니다.

B.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그리스도의 사도 된 바울

사도 바울은 여기서 자기를 소개하는 두 가지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종,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표현입니다.

1. 첫 번째로, ‘하나님의 종이라는 표현은 NIV 영어성경에는 ‘a servant of God’, 헬라어로는 둘로스 데우(δολος Θεοῦ)’라고 되어 있습니다. 둘로스(δολος)란 말은 자유와 권리가 박탈된 노예를 말합니다. 주인에 의해서 생명과 인격이 좌지우지되는 속박된 종을 말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으로서 그를 따라가는 겸손과 순도 100%의 철저한 복종의 태도를 이 말씀을 통해 드러 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자기 정체성입니다.

2. 두 번째의 표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입니다. NIV 영어성경에는 ‘an apostle of Jesus Christ’, 헬라어로는 아포스톨로스(ἀπόστολος)인데, 그 뜻은 보냄을 받은 사람이라는 의미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예수 그리스도의 대사, 예수 그리스도의 일을 맡아 수행하는 미션의 수행자를 뜻합니다. 그 말 속에는 바울의 책임감, 사명감, 열정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로서의 정체성을 잃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께 순종하는 사람이며 미션을 수행하는 주님의 종임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울의 자기 정체성입니다

C. 서신마다 반복되는 바울의 자기소개서

바울은 이같은 자기 자신의 하나님의 종됨과 예수 그리스도 사도됨을 죽을 때까지 신실하게 지켜갑니다. 자나 깨나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 됨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됨을 절대로 잊지 않았습니다. 바울의 서신은 모두 13권입니다. 로마서, 고린도전서, 고린도후서,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데살로니가전후서, 디모데전후서, 디도서, 빌레몬서까지 모든 서신들에서 바울은 자기 자신을 수식하는 언어를 오늘 본문에 나오는 것과 비슷한 어조로 말합니다(데살로니가전후서, 빌레몬서에는 바울이 자기 이름만을 단촐하게 기록하고 있음).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 ‘하나님의 종으로 사도로 택함을 받은 바울혹은 하나님의 뜻을 따라 종된 사도 바울이라고 말씀합니다. 모든 서신속에 거의 비슷한 어조가 계속됩니다. 바울은 모든 서신의 서두에서 자기 자신을 이같이 하나님의 종,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라고 말하며 이 사실을 절대로 잊지 않고 있습니다. 바울이 쓴 모든 서신 가운데 가장 일찍 쓴 서신은 갈라디아서이며, 마지막 서신에 쓴 서신은 디모데후서로 보여집니다. 이 서신의 간격은 수십년이지만 바울은 갈라디아서에서나, 마지막 죽음 앞에서 기록했던 디모데후서에서도 자기 자신은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정체성을 절대로 잊지 않고 변함없이 충성스럽고 성실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이 거룩한 정체성과 사명을 평생동안 변절됨 없이 지켜간 것입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바울의 서신서마다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고 하는 이런 기록들을 지속적으로 보여주고 계실가요? 그것은 바로 우리가 자주 우리의 정체성과 사명감을 망각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누구인지, 어떤 사람인지, 어떤 존재인지, 어떤 직분자인지, 어떤 하나님의 종인지를 자주 잊고 살 때가 많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속적으로 반복하여 서신서마다 이같은 내용을 기록하심으로 우리들이 성경을 읽을 때 마다 우리의 정체성을 일깨워 주고 계십니다. 너는 너의 너됨을 잊지 말라고 하십니다. 내가 목사됨을, 내가 선교사됨을, 내가 교사됨을, 내가 장로됨을, 내가 감독됨을, 내가 집사됨을, 내가 권사됨을, 내가 신앙인됨을, 내가 하나님의 종됨을 절대로 잊지 말라는 오늘의 직분자들에 대한 강력한 도전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바울서신의 11절마다 하나님의 종,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이라는 기록들을 지속적으로 기록하게 하셔서 우리로 하여금 내가 누군지를 일깨워주고 계심을 기억해야 됩니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어리석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면 자주 자기가 누군지를 잊어버립니다. 자신의 정체성을 망각하고 거룩한 책무를 자주 잊는 것이 우리의 문제입니다.

창세기,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의 5권의 책을 모세오경이라고 합니다, 창세기부터 신명기에 이르는 모세오경에 흘러가고 있는 한 가지 중요한 컨셉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언약(covenant)입니다. 거룩한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을 부르셔서 그들과 언약을 맺어 그들을 일컬어 너희들은 내 백성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바로 이것이 시내산의 언약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너희를 모든 세계 열방 중에 건져내어 거룩한 제사장으로, 내 소유된 백성으로, 왕 같은 종들로 선택하셨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하나님과 계약을 맺은 이스라엘은 하나님과 언약을 맺었으니 그들이 성민(Holy People,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십니다. 내가 거룩한 하나님이기에 너희도 거룩하게 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같은 성민의 약속은 하나님과 아브라함의 언약으로 시작됩니다. 그리고 이삭과 야곱, 그리고 모세의 시내산 언약을 거쳐, 광야 생활을 지나고, 마지막으로 신명기에 기록된 모압의 언약에까지 계속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신명기에서 그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거든 그들의 성민(聖民)됨을 절대로 잊어버리지 말고 그 지역의 우상숭배와 유행을 따르지 말라고 하십니다. 창세기부터 신명기까지 흘러가는 모든 말씀의 중심은 바로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 즉 거룩한 백성(the Holy People)됨을 잊지 말고, 성민(聖民)다운 정체성을 가지고 살라는 것입니다. 이것이 모세오경 전체에 흘러가고 있는 중요한 컨셉입니다.

바울은 이같이 자기 자신이 하나님의 종됨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됨을 잊지 않았습니다. 여러분들께서도 하나님께서 나를 부르셔서 내게 맡겨 주신 직분과 사명을 잊지 마시고 죽을 때까지 하나님의 사람답게 살아가시는 하나님의 종들의 되시기 바랍니다.

. 다음으로, 사도 바울의 부르심의 근거에 대하여 살펴보겠습니다(1:1b-2)

이 같은 사도 바울의 하나님의 종과 예수 그리스도 사도로 부름 받은 자기 정체성은 자기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닙니다. 이는 자기 생각이나 소설도 아니고 자기 작품이 아닙니다. 여기는 분명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 근거를 바울은 세 가지로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1-2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의 종이요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 곧 나의 사도 된 것은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과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과 영생의 소망을 인함이라 이 영생은 거짓이 없으신 하나님이 영원한 때 전부터 약속하신 것인데라고 기록합니다. 바울은 자기 자신의 하나님의 종됨과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됨에 대한 근거를 세 가지에서 찾습니다.

A. 하나님의 택하신 자들의 믿음입니다

첫째는 믿음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움직이지 않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바울의 믿음은 스스로 만들어낸 자기 신념, 자기 의지, 자기 작품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셨다는 믿음에 대한 정확한 자기 이해입니다. 인간이 하나님을 붙드는 것은 연약하여 오래가지 못합니다. 그것은 믿음이라 하지 않고 신념이라 합니다. 이는 자기의 육신과 자아의 터 위에 있는 자기의 작품이며, 그 뿌리는 자기 자신입니다. 언제든지 하나님을 놓아버리면 그냥 떨어져 버리고 마는 것이 바로 인간의 신념, 인간의 자의적 믿음입니다. 스스로의 신념에서 만들어진 확신은 상상이요, 소설이요, 가상적 자기 열심에 불과합니다. 그것은 모래위의 집입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를 다니면서도 자기의 신념을 성경적 믿음과 혼돈할 때가 많습니다. 그 믿음은 믿음이 아니라 내게서 나온 자기 신념일수 있습니다. 이것은 거짓 믿음입니다.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의 선물이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닙니다. “너희가 그 은혜를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었나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2:8). 모든 종류의 믿음은 인간의 자의적 신념, 자아적 생산물이 아니라 위로부터 내려오는 하나님의 거저 주시는 선물(Free Gift)입니다. 그냥 받는 것입니다. 만약 누가 구원받은 믿음이 있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은혜로 받은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바울은 자기 자신의 하나님의 종된 근거를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들의 믿음이라고 말해 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선택에 대한 믿음(the Faith of God’s Elect)입니다. 내가 만들어낸 믿음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인이 되었습니까? 하나님의 종으로 섬기고 계십니까? 그것은 내 신념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선물로서의 은혜가 내 안에 들어와, 믿음으로 말미암아 응답하여 주님의 종이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울의 택함의 믿음입니다. “너희가 나를 택한 것이 아니요 내가 너희를 택하여 세웠노라”(15:16). 인간 쪽에서 하나님을 붙드는 믿음은 신념일 뿐 아니라 모래 위에 세워진 가짜 믿음이며 오래 가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선택하셨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사도 베드로를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님께서 내가 체포되고 십자가에 죽어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나를 주게 되리라고 하시니 베드로는 나는 끝까지 주님을 버리지 않겠다고 맹세하며 말했습니다. 다른 제자도 똑같이 말했지만 이들은 예수님께서 붙잡혀 가실 때 모두 다 주님을 떠나갔고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 부인하게 됩니다. 베드로가 가졌던 확신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자아에서 비롯된 인간적 신념이지, 믿음이 아니었습니다. 위로부터 우리를 부르셔서 택하신 자들의 믿음은 흔들림과 공허함이 없는, 요동치 않는 견고한 반석 같은 믿음입니다. 주님께서 붙드시기에 견고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심에 대한 믿음이 우리의 부르심의 근거입니다. 택함에 대한 믿음. 이것이 바울을 바울답게 하는 원동력임을 기억하시고, 바울처럼 하나님께서 나를 택하여 부르셨다는 확신을 가지고 살아가시는 택함받은 믿음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B.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입니다

두 번째 바울의 하나님의 종됨의 근거는 진리의 지식, 즉 성경말씀입니다. 여러분의 하나님의 종된 근거와 부르심의 뿌리가 어떤 이상한 신비체험이나 신앙적인 경험에 있다면 이는 오래가지 못합니다. 우리를 부르심의 근거는 하나님의 말씀이 되어야 됩니다. 진리의 지식의 말씀은 흔들리지 않는 견고한 반석과 같은 것입니다. 이 진리의 지식은 경건함에 속한 진리의 지식입니다. 경건함과 거룩함이 함께하는 하나님 말씀의 압도적인 역사가 임할 때 우리가 하나님의 종으로 서게 되며 그것이 우리를 붙들어주는 강력한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한 분들, 하나님의 압도적인 말씀의 은혜를 경험하지 못한 분들은 부르심을 받아도 중간에 배교하거나 거짓 확신으로 살다가 주님을 떠나 살 때가 많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사람들은 말씀에 붙들린 바 되어야 합니다. 바울이 말하는 대로 바울의 부르심의 근거는 인간적 신앙체험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는 압도적인 하나님의 거룩한 권능의 역사였던 것입니다. 이것은 단순한 진리의 지식이 아니라 경건함에 속한 거룩한 생명력이 있는 진리의 말씀입니다. 영어성경에는The knowledge of the truth that leads to godliness. 즉 우리를 경건함으로 이끌어가는 진리의 지식이라고 말합니다.

이사야 6장에 보시면 이사야라는 선지자의 간증이 나옵니다. 그는 많은 말씀을 증거 했지만 그의 입술과 그의 삶은 깨끗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말씀대로 살지 못하는 자신을 늘 자책하고 있었는데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하나님의 성전에 올라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합니다. 스랍들이 날개를 치며 만군의 하나님의 영광을 노래할 때 이사야는 하나님앞에서 엎드러지게 됩니다. 이 거룩한 하나님 임재 앞에서 그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서 살면서 하나님을 뵈었음이로다. 그때 하나님의 명령을 따라 스랍중 하나가 제단의 숯불하나를 가져다가 그의 입에 댑니다. 그의 영혼과 입술은 하나님의 압도적인 역사 앞에 정결하게 됩니다. 그의 부정함과 악은 성령과 말씀의 능력으로 태워져 버리게 됩니다. 그는 거듭난 사람이 되었고, 주님의 소리가 들립니다.우리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 하나님의 은혜로 정결케 된 하나님의 종 이사야가 대답합니다.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압도적으로 임하여 거룩함의 역사를 체험할 때 그것이 우리의 부르심의 근거가 되는 것입니다. 인간의 얕은 체험, 조금 있다 사라지는 그런 체험들이 아니라 영속적인 하나님 말씀의 은혜가 임할 때 그것이 나를 지배함으로 부르심을 받게 됩니다.

모세가 호렙산 떨기나무 가운데 주님의 음성을 듣습니다.「모세야 모세야, 내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길갈에서 하나님께서 여호수아를 만나주시고 말씀하십니다.「여호수아야,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종들은 거룩한 압도적인 하나님의 말씀의 역사 앞에 무릎 꿇고 깨어진 주님의 종들입니다. 바울 자신도 마찬가지입니다. 사도행전 9장에 보시면 바울이 예수믿는 다메섹에 있는 성도들을 다 옥에 잡아 가두려고 대제사장에게 받은 공문을 가지고 가는 중간에, 다메섹도상에서 길에서 하나님앞에 엎드러집니다. 하나님의 빛이 그를 둘러 비추었고, 하나님의 소리가 들립니다.「사울아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이 말합니다.「주님, 누구십니까」.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나는 내가 핍박하는 예수니라」. 바울은 묻습니다.「주님, 무엇을 하면 좋겠습니까?. 그때「너는 이방인을 위한 나의 그릇이 되리라」고 말씀하십니다. 압도적인 그리스도 예수의 말씀의 실제적 역사가 임하여 그 앞에 바울이 엎드러졌습니다. 이는 하나님의 압도적인 말씀과 성령의 역사입니다. 우리의 부르심에 근거는 내 경험이나 자기 신념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에 붙들리는 압도적인 역사로 임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말씀에 붙들려야 합니다.

C. 영생의 소망입니다

마지막 세 번째 근거는 영생의 소망입니다. 바울이 왜 그같은 고난속에서 순교할때까지 믿음을 버리지 않았을까요? 영생의 소망이 바울을 하나님의 종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이 같은 견고한 부르심속에서 흔들림이 없이 살아갔던 것입니다.

세상에는 거짓된 영생을 소망하는 자들에게 너무나 많습니다. 우리 인간들은 일반적으로 불로, 불사, 장생, 영생을 갈망합니다. 그래서 늙는 것이 싫고, 피부에 주름잡히는 것이 싫고, 병드는 것이 싫고, 나이 드는 것이 싫고, 죽는 것이 싫습니다. 그래서 무당들은 꽃중에서 생화보다는 조화를 선호합니다. 생화는 빨리 죽지만, 조화는 인위적으로 만든 인공의 꽃이기 때문에 비교적 오래갑니다. 그래서 무당들은 집에 조화를 가져다 놓고 영생을 갈망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결국 영벌로 들어가게 됩니다. 무당, 박수, 신접자 같은 술객들은 불과 유황으로 타는 못에 들어간다고 말씀하십니다(21:8). 그들의 영생불사의 소망은 허상입니다. 상상입니다. 그저 갈증일 뿐입니다. 무당의 부류들은 가증하다고 여겨 구약시대에는 돌로 쳐죽였습니다. 여러분은 무당집에 가거나 택일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사할 때 손 없는 날 보지 마시고, 사주, 팔자, 궁합도 보지 마십시오. 이는 그리스도인의 할 일이 아닙니다. 과감하게 끊어버려야 됩니다. 현혹되면 안 됩니다. 요즘 TV에서도 무당들 이야기가 너무나 많습니다. 이집트 사람들은 사람이 죽으면 미이라를 만듭니다. 이는 시신이 부패하지 않도록 시신을 장례하는 방법입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이 갖고 있는 죽음의 철학이 있습니다. 이는 사람이 죽게 되면 영혼이 사후 세계로 들어가게 되는데 언젠가는 그 영혼이 다시 돌아온다고 믿기 때문에 육체와 결합을 위해 육체가 온전히 보존되어야 한다는 사상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몸에 있는 내장을 다 꺼내고 그 안에 향재료를 집어 넣어서 미이라 형태로 만들었습니다. 그러나 여러분, 지금 그 미이라들은 다 어디에 있습니까? 모두 다 박물관의 골동품이 되었습니다. 그들의 영생의 소망은 소설이고, 상상이며, 인간의 허무한 작품일 뿐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거짓이 없으신 참 하나님이십니다. 거짓이 없으신 영생의 하나님께서 우리들에게 영생의 소망을 주십니다. 이는 참이요 실재입니다. 바울은 그 영생의 소망이 있었기 때문에 그 소망을 붙들고 모든 환란을 이겨내며 순교하여 죽기까지 달려갑니다. 그는 인생의 모든 길을 마칠 때까지 하나님의 종됨의 본분을 있지 않았던 것입니다. 영생의 소망의 부르심만이 우리를 견고하게 합니다.

믿음, 말씀, 소망, 이것이 바로 우리를 하나님의 종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뿌리요, 에너지요, 능력임을 알아야 합니다.

결론// 하나님의 종된 나의 정체성을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선택 받은 자의 믿음, 거룩한 진리의 지식의 말씀, 영생의 소망안에서 부르심을 견고케 하시는 그리스도인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요약: 강퐁이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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