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노창영 목사 -
디도서강해(Ⅵ):그레데교회의 실상
본문 말씀 : 디도서 1:13-16
2021.10.10설교요약
제목: 디도서강해(Ⅵ):그레데교회의 실상 본문: 디도서 1:13-16 설교자: 노창영목사
서론// 이 복된 주일에 하나님께서 말씀의 꼴로 우리를 먹여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모든 성도들은 은혜받으시기를 원합니다.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은 11월9일 정도되면 위드 코로나(With Corona·단계적 일상회복)가 되지 않을까 하는 예측을 했습니다. 이는 감염의학이나 예방의학 관련 전문가들의 의견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될지는 아직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지난 7월1일부터는 마스크 벗고 조금 더 자유롭게 완화된 상태에서 일상생활을 할수 있을 것이라는 예측을 했지만 4차 팬데믹(Pandemic)이 터졌고, 그 이후 3달 동안 너무 힘든 시간을 보냈고, 예배도 거의 2달 정도를 비대면으로 드린 적이 있습니다. 지금도 그 상황이 유지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너무 일찍 샴페인을 터뜨리면 안 됩니다. 물론 그렇게 될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그러나 기대를 잔뜩 했다가 안 되면 실망이 크기 때문에 우리들이 믿음생활을 할 때도 늘 주의해야 합니다. 너무 촐싹대면 안 됩니다. 이런 얘기 하면 이 쪽으로 귀가 쏠리고, 저런 얘기하면 저 쪽으로 귀가 쏠리고, 이렇게 흔들리다 보면 평안은 다 깨어지고 중심을 잃어 버립니다. 흔들리지 않고 주님 바라보는 진중한 자세가 그리스도인의 자세임을 기억하시고 믿음의 중심을 지켜 반석같은 믿음으로 나아가면 좋겠습니다. 환경이 나아져서 위드 코로나가 오면 좋겠지만 코로나19의 종식은 하나님의 손에 있습니다. 이를 기억하시고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는 성도들이 되어야 하겠습니다.
오늘은 디도서강해 여섯번째 설교시간입니다. 오늘의 본문은 디도서 1:13-16말씀입니다. 저는 그동안 여러분들에게 그레데교회의 거짓 교사들과 할례당들과 이들의 추종하는 어둠의 세력의 뿌리가 어디서 온 것인가를 말씀하면서, 이는 그레데인들이 가지고 있던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악습과 지역적인 문화에서 나온 잘못한 타락의 죄성에서 온 것임을 설교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봅시다.
Ⅰ. 먼저,「이 증거가 참되도다」라는 말씀에 대하여 상고합시다(1:13a)
그레데인들이 가지고 있던 악한 행실인 항상 거짓말쟁이(Always Lairs), 악한 짐승(Evil Brutes), 그리고 배만 위하는 게으름쟁이(Lazy Gluttons)라는 평가는 B.C.600년경 그레데출신의 시인이요, 선지자였던 에피메니데스(Epimenides)라는 사람이 한 말입니다. 바울이 그레데인들의 악한 모습을 보니 그 사람이 한 말이 그대로 들어 맞는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그 사람이 너희에 대하여 얘기한 것이 틀린 것이 하나도 없다라고 한 것입니다. 그레데교인들이 하는 악한 모습을 보니 그 증거가 참되도다라는 얘기입니다.「이 증거가 참되도다」라는 1:13a의 말씀은 그레데교인들의 모든 악한 행실의 뿌리가 그레데인들이 갖고 있는 우상숭배와 망령된 뿌리에서 왔다는 것을 보여준 것입니다 사람이 예수님을 믿으려면 과거의 문화적인 죄성이나 지역적인 악습 같은 모든 뿌리를 잘라내고 할례를 받아 교회에 들어 와야 하는데 그레데교인들은 자연인 그대로 할례를 받지 않고, 십자가에 죽지 않고, 교회에 오다 보니 결국 교회공동체가 무너지고 온통 다 뒤짚어지는 일이 발생한다는 것입니다. 이 말씀은 어떤 의미에서는 그레데교회에 대한 바울의 책망과 거룩한 비난입니다. 그레데인들의 악습을 그대로 가지고 교회에 들어오면 되겠느냐라는 얘기입니다. 바울은 이 같은 자들을 꾸짖으라고 말을 합니다.
Ⅱ. 다음으로, 바울이 이 같은 자들에 대하여 디도에게 지시한 지침을 상고합시다(1:13b-14)
A. 바울은 이같은 자들(1:10-12)을 엄히 꾸짖으라고 디도에게 명령합니다
본문은「이 증거가 참되도다 그러므로 네가 저희를 엄히 꾸짖으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은 이 같은 거짓 교사들과 할례당들과 이들을 추종하는 자들을 엄히 꾸짖으라고 말합니다. 그저 보통 꾸짖는 것이 아니라 대단히 크게 심하게 경책하라고 강력하게 말씀해주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한 진노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랑과 자비의 긍휼의 하나님이심이 맞지만, 인간의 죄에 대해서는 가차없는 강력한 심판의 불로 태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저희를 심히 꾸짖으라」는 말의 원어는 헬라어로 엘렝케 아우투스 아우토모스(ἔλεγχε αὐτοὺς ἀποτόμως)라고 합니다
① 엘렝케(ἔλεγχε)는 영어로 Rebuke, 즉 꾸짖다, 야단치다, 책망하다라는 말입니다.
② 아우투스(αὐτοὺς)는「그들(Them)」인데 이는 그레데교회에 들어온 악질적인 거짓 교사들과 할례당, 그리고 그들을 추종하는 무리들을 말합니다.
③ 아포토모스(ἀποτόμως)는 「엄히」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 뜻은 연장을 가지고 어떤 것을 베어 버리다, 잘라 버리다, 절단하다라는 뜻입니다. 아주 과감하고 예리하고 분명하고 확실하게 잘라 버리라는 말입니다. 다른 말로 하면 이 같은 자들을 내버려 두지 말고 엄하고, 예리하고, 정확하고, 분명하게 그들을 야단치라는 말입니다. 이들의 입을 다물게 하고 엄히 꾸짖는 것이 바울이 말하는 망령된 자들에 대한 태도입니다.
출애굽기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가 시내산으로 올라간 사이에 금송아지를 만들어 그 앞에 절을 합니다 모세가 산에서 내려왔을 때 이 모습을 보고 분노하며 하나님께 받은 돌판을 던져 깨뜨려 버립니다. 패역한 백성들을 향하여 야단을 칩니다. 책망입니다. 그 이후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와 가나안에서 너무나 여러번 하나님 앞에 원망과 불평과 거역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하여 책망의 하나님으로 다가오셔서 이처럼 패역한 이스라엘백성에게 하나님의 진노의 말씀을 증거했던 것입니다.
엘리야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종 엘리야가 사역할 때는 아합왕과 그의 부인 이세벨이 주도하였던 바알과 아세라신 우상숭배가 극에 달했던 때였습니다. 그 때 하나님의 종 엘리야는 아합에게 여러 차례 책망합니다. 아합이 한 번은 엘리야를 만나 그를 향하여 너는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자라고 말합니다. 그때 엘리야는 아합왕에게 이스라엘을 괴롭게 하는 것은 내가 아니라 당신과 이스라엘 백성들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갈멜산에서 모든 백성을 불러 모아놓고 책망을 합니다. 너희는 너희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든지 아니면 바알신이나 아세라신을 섬기든지 머뭇거리지 말고 하나를 택하라고 말합니다. 패역한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책망의 말씀을 증거했던 불의 선지자가 바로 엘리야였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도 가이사 빌립보에서 제자들에게 인자는 자신을 생명을 대속물로 주어야 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절대로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는「사탄아 물러가라」고 하시면서, 네가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않고 사람의 일을 생각한다고 그를 책망하셨습니다.
제가 아는 어떤 교회의 목사님은 정말 순한 양같은 목사님이셨습니다. 그 교회에 신실하고 믿음 좋은 여자 집사님이 있었는데 남편을 잘못 만나서 가정생활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그는 술 마시고 아내와 자녀를 폭행하고 온갖 나쁜 짓을 다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 망나니 같은 남편이 어느 날 집에 들어와 술을 마시고 난동을 부리면서 가족들을 위협을 해서 무서움에 떨던 그 여집사님은 목사님댁으로 달려갔습니다. 그 여집사님의 이야기를 들으신 목사님은 그 집으로 갔습니다. 남편은 술 마시고 눈이 벌겋게 되어서 식식거리고 있었습니다. 순한 양 같았던 목사님께서 큰소리로 호통을 쳤습니다.「당신, 이런 모습으로 계속 살겁니까? 지옥가고 싶어요? 하나님의 진노가 떨어지면 어떻게 되는 줄 알아요? 계속 이렇게 개망나니로 살 것입니까?」그런데 그때 하나님의 역사가 나타났습니다. 그 남편은 그 말을 듣고 바닥에 엎드리더니「목사님, 제가 잘못했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면 되겠습니까?」라고 하였고, 그 날 그는 회개하였습니다. 그는 그 주일부터 교회에 나오면서 완전히 사람이 달라졌습니다. 이는 성령님의 강력한 역사입니다. 아무나 흉내 내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능력과 영력이 뒷받침 될 때 역사가 이루어집니다. 때때로 이 같은 악질적인 사람들은 본때를 보여줘야 합니다. 정신차리게 해야합니다. 꾸짖음이 바로 이런 것입니다.
제가 어떤 교회에서 교육담당 부목사로 있었을 때에 이런 일이 있었습니다. 각 부서를 담당하는 유치부, 아동부, 중․고등부, 청년부 교역자들과 같이 팀을 이루어서 사역을 하고 있던 어느 날 청년부 담당 교역자가 제게 와서 힘든 일을 이야기했습니다. 그 교회 청년부안에 영향력있는 빅브라더(Big Brother, 큰 형님)가 한 명 있는데 신학을 하려고 교회를 떠나 다른 교회에서 사역을 하고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교회를 떠난 그가 지금까지도 청년들을 만나고 좌지우지하니 목회가 너무 힘들다고 하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빅브라더를 불렀습니다. 그리고 앉혀 놓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이 동네에 악질적인 청년부 선배 한명이 있다고 들었다. 그 녀석이 교회를 떠나고 나서도 자기가 있었던 교회청년들을 자기 마음대로 리모트 콘트롤하고 좌지우지 한다는데 목회윤리도 모르는 그런 놈은 목회자로서는 자격미달이야. 이런 녀석은 목회자가 될 수 없어. 그게 바로 너야!」라고 호통을 쳤습니다. 그리고 다시는 우리 교회근처에 얼씬도 하지 말고 우리 교회 청년들에게 연락도 하지 말라고 말했더니, 그는「목사님, 정말 죄송합니다. 제가 잘 몰랐습니다」라고 말하고 떠나 갔습니다. 그 뒤에 그 청년부 전도사님은 늘 제게 고마워 했습니다. 그는 제게 「제가 이제 목회를 제대로 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지금은 경상도에서 목회를 잘 하고 있습니다. 심히 꾸짖으라는 바울의 가르침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B. 바울은 이 같은 꾸짖음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1:13b-14)
「이는 저희로 하여금 믿음을 온전케하고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사람들의 명령을 좇지 않게 하려 함이라」라고 말씀합니다. 바울의 꾸짖음의 목적은 2가지입니다.
① 첫째는 저들의 믿음을 온전히 세워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자녀들에게, 후배들에게, 후손들에게 왜 야단을 치고 책망을 합니까? 야단하고 꾸짖는 목적은 무너뜨리고, 깨뜨리고, 죽이려는 것이 아닙니다. 살려 주려는 것입니다. 바울은 바르게 세우려고, 믿음을 세우려고 그레데교인들을 꾸짖으라고 합니다. 꾸짖음의 목적은 죽이는 것이 아니라 믿음을 온전히 세우려는 것입니다. 여러분들께서 혹시 어떤 사람을 야단치고 책망할 목적이 있다면 먼저 기도하시고 끌어안고 그 뒤에 야단치셔야 합니다. 욱하는 성급함이나 순간적인 열 받은 마음으로 야단치면 이는 그 사람을 죽이는 것입니다. 책망과 꾸짖음의 목적은 믿음을 세워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비가 많으신 분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죄를 지을 때도 길이 참으셨습니다. 노하기를 더디 하시고 그들의 죄악대로 갚지 않으십니다. 만일 우리의 죄악대로 갚으신다면 우리는 끝장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자비 때문에 우리가 살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엄중한 심판 앞에 설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어떤 의인이 그 앞에 설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과 오래 참음과 용납함 때문에 우리가 있는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에 들어가서 하나님을 떠나 죄짓고 우상숭배하고 패역하게 살았으나 하나님께서는 길이 참아 주셨습니다. 그러나 마지막 때에 심판을 내리셔서 무시무시한 바벨론의 군사들이 공격하여 하나님의 성전을 완전히 훼파시키고, 예루살렘성을 무너뜨려 버리고, 백성은 흩어지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은 무너진 흔적만 남게 되었고 시랑과 늑대들만 어슬렁거리고, 엉겅퀴와 찔레가 나고 황폐하게 됩니다. 그리고 70년간 바벨론의 포로로 갔다가 돌아오게 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완전히 그들을 자르지 않으셨습니다. 나무를 잘라내면 그루터기가 남는 것 같이 남은 자들(Remnants)을 돌아오게 하셨고 그들을 통해서 새로운 이스라엘의 역사를 만들어 가십니다. 무너진 나라와 백성을 다시 살려주십니다. 꾸짖음과 책망의 목적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닙니다. 사람을 살려내고, 세워주고, 일으켜주는 것입니다.
② 둘째는 유대인의 허탄한 이야기와 진리를 배반하는 자들의 명령을 좇지 않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레데교회 안에는 진리를 배반하는 거짓 교사들, 할례당들, 그리고 그들의 추종자들이 많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유대인의 허황된 전설이나 신화와 관습을 따르고, 진리를 배반하며 살아갔습니다. 바울은 이 같은 자들의 명령을 따르지 않도록 가르치라고 디도에게 명령합니다. 꾸짖음과 책망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잘못된 행실을 보면서 거룩한 칼, 진노의 칼, 심판의 칼, 책망의 칼을 들어 죄악과 악습을 베어내고 잘라내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Ⅲ. 셋째로, 바울은 마음과 양심을 깨끗하게 하도록 권면합니다(1:15)
A. 사물과 인간의 마음에 대하여
그레데교회에는 유대인들이 있었습니다. 이 들은 그리스도인들도 유대인의 할례와 규례를 지켜야 한다고 요구했습니다. 먹을 것과 못 먹을 것, 정한 것과, 부정한 것, 정결규례, 안식일, 유월절과 맥추절과 수장절의 절기 등의 구약의 모든 규례들을 따라 가도록 가르쳤습니다. 이것 때문에 율법으로부터 자유함을 얻은 많은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 부담을 느꼈습니다. 주님을 믿으면 자유인입니다. 그런데 이 할례당들은 구약의 율법에 묶여 그대로 살자고 하였습니다. 그때 바울은 말하였습니다. 깨끗한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깨끗하지만 더럽거나 믿음이 없는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더럽다고 하였습니다. 왜냐하면 저들의 마음과 양심이 더럽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사람은 마음가짐이 중요합니다 이 땅의 사물들은 선도 악도 아닌 것들이 너무 많습니다. 돈은 선도 악도 아닙니다 그냥 사물입니다. 돈은 잘 쓰면 범사에 응용된다고 전도서에 나옵니다. 그러나 돈을 사랑하면 일만 악의 뿌리가 되기 때문에 허탄한 부에 소망을 두지 말라고 바울은 가르칩니다. 사물들은 중성입니다. 사람의 마음의 태도에 따라 영적 가치, 도덕 가치, 윤리적 가치가 부여되는 것입니다. 집도 마찬가지입니다. 집을 잘 지으면 예배당도 되고, 주택도 되지만 잘 못지으면 범죄의 소굴도 됩니다. 세상에는 다양한 집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집 자체는 아무 문제가 없습니다. 누가 사용하느냐가 중요합니다. 집의 가치는 사용 용도에 따라 달라지고 사용하는 사람의 인격에 따라 달라집니다. 음식도 마찬가지입니다. 음식자체가 무슨 죄가 있습니까? 음식을 접대하면서 뇌물성의 의도로 접대를 하면 악한 음식이 됩니다. 음식물 접대 속에 의도가 들어가 나쁜 도덕적 가치가 부여 된 것입니다. 음식은 죄가 없습니다. 지위도 마찬가지입니다. 왕, 대통령, 고관대작 등 어떤 높은 자리에 있는 자리들 그 자체는 죄가 아닙니다. 그러나 그 자리를 이용하여 욕심을 품고 악한 마음을 가지고 살아갈 때에 그 자리는 악의 자리가 됩니다. 여러분이 집에서 쓰시는 칼은 야채, 고기, 과일을 자릅니다. 하지만 이것은 사용하는 사람에 따라 흉기도 되는 것입니다. 야구방망이도 야구경기에는 필수품이지만, 조폭들에게는 사람을 때리는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모든 사물은 중성입니다. 선도 악도 아닙니다. 거기에 인간의 영적 가치, 도덕적 윤리적가치가 부여됨으로 달라지게 되는 것입니다.
B. 마음과 양심의 깨끗함에 대하여
그레데교회의 할례당들은 율법을 지키고 할례를 받는 일을 강조했습니다. 예를 들면 우리가 지키는 절기가 도대체 무엇입니까? 여러분 부활주일이 무엇입니까? 우리가 만든 것입니다. 성경에는 부활주일이 없습니다. 크리스마스, 추수감사주일은 모두 인간이 교회전통에 따라 만들어 낸 것입니다. 주님께서 제정하신 교회의 규례는 성찬과 세례 두 가지 밖에 없습니다. 다른 것들은 인간이 교회력을 따르거나 영적 이유로 만들어 낸 것입니다. 동방정교회는 12월 25일이 성탄일이 아닙니다. 추수감사주일은 11월 셋째 주일입니다. 다른 날짜에 하면 어떻습니까? 어떤 교회는 추석 때 추수감사절을 지킵니다. 이는 죽고 사는 문제가 아닙니다. 그런데 할례당들은 그런 규례에 목숨을 걸고 성도를 괴롭게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은 깨끗하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음식, 사물은 모두 다 아름답고 귀한 것이다라고 합니다(딤전4:1-5). 바울은 불필요하게 자기 의와 율법주의로 남을 비판하고 괴롭게 하는 할례당들을 보면서 깨끗한 자는 모든 것이 깨끗하여 믿음이 없고 마음이 더러운 자는 모든 것이 더럽다라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그 전에 먼저 마음과 양심을 깨끗하게 하라고 말씀합니다.
전통적으로 로마 카톨릭교회에서는 사순절(四旬節, The Lent)을 지킵니다. 40일동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죽으심을 생각하는 기간을 말합니다. 중세교회 전통에 따르면 렌트기간에는 절대 고기를 먹으면 안 되었습니다. 그런데 1522년 3월경 스위스에 취리히의 그로스뮌스터(Grossmunster)교회의 사제로 있었던 울리히 쯔빙글리(Huldrych Zwingli, 1484-1531)는 사순절기간에 소세지를 먹는 사람들 옆에 같이 앉아 있었습니다. 크리스토퍼 프로샤우어(Christoph Frochauer)라는 복음적인 사람은 인쇄업자와 노동자들이 배가 고플 때 함께 앉아 식사 하면서 소세지를 먹었습니다. 사순절기간에는 절대로 소시지를 먹을 수가 없습니다. 쯔빙글리는 옆에 앉아 있었지만 소세지를 먹지는 않았습니다. 하지만 이 것을 알게된 누군가가 시의회에 고발을 했습니다. 시의회는 로마 카톨릭 주교단에 이들의 재판을 의뢰했습니다. 이때 쯔빙글리가 이를 막았습니다. 그리고 쯔빙글리는 이후에 글을 하나 썼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음식을 먹을 자유에 대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이 스위스종교개혁의 도화선이 됩니다. 사순절은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입니다. 물론 우리가 하나님이 주신 모든 예식이나 규례를 다 버리라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우리는 율법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우리들에게 자유를 주셨습니다. 마음이 더러운 사람은 모든 것이 더럽게 보이고 마음이 깨끗한 사람은 다 아름답게 보이는 것입니다. 마음에 복음과 자유가 있는 그리스도인은 사람도 아름답고, 하늘도 아름답고, 교회도 아름답고, 성도도 아름답고, 하루하루가 아름답고, 아침에 깨어나 일하는게 아름답고 귀하게 보이는 것입니다. 사물, 규례, 절기, 율법에 묶이지 말고 아름다운 마음으로 사시기를 바랍니다.
Ⅳ.마지막으로, 바울은 그레데교회의 위선적인 신앙인들의 실상을 말씀합니다(1:16)
본문은「저희가 하나님을 시인하나 행위로는 부인하니 가증한 자요 복종치 아니하는 자요 모든 선한 일을 버리는 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그레데교회에 들어온 사람들은 하나님을 입으로 고백하고 시인했습니다. 그러나 행위로는 부인했습니다. 이는 이율배반적이요, 이중인격적이요, 위선적인 믿음생활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가정에서의 자기 얼굴, 혼자 있을 때의 자기 얼굴, 교회에서의 자기 얼굴, 직장에서의 자기 얼굴, 학교에서의 자기 얼굴, 친구 만날 때의 자기 얼굴, 가족 만날 때의 자기 얼굴, 동창들을 만날 때의 자기 얼굴, 외국여행갈 때의 자기 얼굴 등, 이 모든 것이 다 똑같아야 합니다. 입으로는 그리스도인이지만 행위로는 부인하면 안 됩니다. 바울은 이 같은 위선적인 신앙을 가증스럽고, 혐오스럽다고 합니다. 또한 바울은 이들은 거역하고 복종치 아니하는 자들이고, 모든 선한 것들을 버리는 자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 1918-2018)목사님은 우리나라에 여러 차례오신 세계적인 부흥사입니다. 이 목사님은 세상을 떠나기 전까지 미국인들이 뽑은 가장 위대하고 존경하는 분 1,2,3위권 안에 꼭 들어 갔던 분입니다. 그런데 그가 살아계실 때 어떤 파파라치 한사람이 빌리 그래함 목사님의 개인 사생활을 파헤치려고 뒷 조사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10년동안을 목사님을 쫒아 다니면서 사생활을 엿보고, 도청하고, 사진찍고, 염탐했습니다. 이 사람은 보통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주로 유명한 사람들의 스캔들을 터트려 내보내는 악질적인 기자였습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을 10년동안 쫓아다닌 그 사람은 지쳐서 이렇게 고백을 했다고 합니다.「나는 10년동안 빌리 그래함 목사님을 쫓아 다녔지만 그의 삶에 있어서 어떤 점이나 흠을 찾아본 적이 없었다」. 빌리 그래함 목사님은 하나님을 입으로 시인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하는 이중적인 사람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레데교회 안에는 그레데 사람이 갖고 있던 조상의 망령된 행실들이 그대로 들어와 겉과 속이 다른 이중적 신앙생활을 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우린 약합니다. 100% 완벽한 사람이 아닙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내 안에 들어오시게 하셔서 신행(信行)이 일치되는 신실한 삶으로 점점 달라져야합니다.
목사님들과 장로님들이 모인 어느 장로교회의 노회에서 젊은 목사님 한 명이 스캔들때문에 붙들려 와서 추궁을 당했습니다. 많은 노회원들은 그의 목사직을 박탈하고, 목회를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고 큰 소리를 치며 난리를 쳤습니다. 그 중에 존경받고 인품이 훌륭한 한 목사님이 일어나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여러 형제 목사님들, 장로님들, 한 말씀 드릴 것이 있습니다. 이 젊은 목사에게 우리가 돌을 던지고 있지만, 여러분은 나부터 돌을 던지십시오. 제가 오늘 아침에 노회에 나올 때에 어느 육교에서 계단을 내려 오다가 뒤에 젊은 여자가 내려 오는 것을 보고 뒤돌아서서 그 여자의 치마 속을 봤습니다. 이게 바로 저입니다. 이 사람과 내가 뭐가 다릅니까? 그러니 나부터 돌을 던지십시오」모든 사람들은 비난하던 말을 멈추고 그 젊은 목사의 회개를 받아들이고 용서하였다고 합니다. 우리는 약합니다. 어떤 일에서도 우리의 신앙의 견고성을 자신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주님만을 의지해야 합니다. 이 세상에는 어떤 사람도 100% 천사가 없습니다. 우리는 신도, 천사도 아닙니다. 그것이 우리들의 모습입니다.
일제식민지 때 일본사람들이 조선족들은 황국식민이라고 생각을 하고, 각 지역과 교회와 학교 등의 여러 곳에 신사를 세우고 신사참배를 강요하였습니다. 이 때 어느 목사님들의 모임이 있었습니다. 목사님들은 모두 다 똑같이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라고 하면서 반대를 맹세하였습니다. 모두 다 이구동성으로 목숨 걸고 기독교신앙을 지켜야 한다고 굳게 맹세한 것입니다. 그 때 한상동(韓尙東, 1901-1976)목사님이 일어나서 말했습니다.「여러분, 저는 제가 신사참배를 할지 안할지 자신을 못하겠습니다. 정말 일본군들이 와서 저의 목숨을 협박하며 강요한다면 약한 저는 신사참배를 할지도 모르겠습니다. 그저 기도만 할 뿐입니다. 우리 모두 기도하면서 주님만을 의지 합시다」. 그런데 나중에 보니 그 모임에 참석하여 신사참배를 하면 절대 안 된다고 한 목사들은 모두 다 신사참배를 했고 오직 한 분만이 신사참배를 안 했습니다. 바로 한상동 목사님이셨습니다. 우리는 약하지만 주님을 입으로만 시인하지 말고 행위로 실천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입으로는 하나님을 시인하지만 행위가 없는 사람들이 그레데교회에 많았습니다. 바울은 이 같은 그레데교회성도들의 실상을 보면서 꾸짖고 있습니다.
결론// 우리는 나약합니다. 힘이 없습니다. 그러나 성령님의 능력과 십자가의 능력으로 하나님을 입으로만 시인하는 사람이 아니라 삶을 통해 신앙을 증거하는 그리스도인으로 걸어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설교요약: 장세훈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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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0 | 사십주강해(VIII):십계명(5)-제9계명 | 2025-06-15 | 출애굽기 20:16 23:1-3,6-8 | 노창영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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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9 | 우리는 하나님의 만드신 바니라 | 2025-06-08 | 에베소서 2:10-22 | 김원호 선교사(튀르키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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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8 | 스가랴서에 나타난 하나님의 사랑 | 2025-06-01 | 스가랴 3:3-5,4:6,11-14,6:1-8 | 노창영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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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7 | 부자와 거지나사로 | 2025-05-25 | 누가복음 16:19-31 | 최홍규 목사(가리봉교회 원로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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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 | 내 인생에 참꽃을 꽂아 주셨습니다 | 2025-05-11 | 에베소서 6:1-4 | 김운용 총장(장로회신학대학교) | 127 | |
665 | 작지만 큰 것 | 2025-05-07 | 마태복음 13:31-33 | 이동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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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4 |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 | 2025-04-27 | 마태복음 6:33-34 | 김환태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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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3 | 예수님께 드리는 선물 | 2025-04-20 | 요한복음 11:38-44 | 김창근 목사(무학교회 원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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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2 | 무엇을 좇고 계십니까? | 2025-04-13 | 요한복음 12:12-19 | 이동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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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 | 얼굴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 | 2025-04-06 | 사도행전 6:15,7:54-60 | 손호송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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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 | 예수의 흔적 | 2025-03-23 | 갈라디아서 6:14-17 | 정영택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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