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노창영 목사 -
나사로의 부활 강해(Ⅲ):예수님의 눈물
본문 말씀 : 요한복음 11:32-36
제목: 나사로의 부활 강해(Ⅲ): 예수님의 눈물 본문: 요한복음 11:32-36 설교자: 노창영목사
서론// 하나님께서 말씀으로 은혜 주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눈물에 대하여 이야기를 하려고 합니다. 역사를 통하여서 여러 사람들이 눈물과 관련된 명언을 남겼습니다. 피어 바커(Peare Barker)는 “눈물은 영혼의 창문을 정화시킨다(Tears clean the windows of the soul)”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18세기 신앙인 존 케블(John Keble)은 “눈물은 고난당하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최고의 선물이다(Tears, The best gift of God to suffering man)”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16세기의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William Shakespeare)는 “눈물은 슬픔의 깊이를 감소시키는 것이다(To weep is to make less the depth of grief)”이라고 이야기 했습니다. 눈물을 통해 아픔이 감소되고, 아픔이 치료된다는 것입니다. 눈물은 작은 물방울이지만 우리를 치료해주는 놀라운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에 보면 예수님께서 우셨다는 기록이 세 번 나옵니다. 그 중 하나가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가 죽었을 때 예수님께서 흘리신 눈물입니다. 예수님께서 베다니에 사는 나사로의 장례에 가셨을 때 마르다와 마리아, 온 유대인이 울고 있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모습을 보시며,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오늘은 나사로의 부활 강해 세 번째 설교를 하겠습니다. 오늘은 예수님의 눈물에 대하여 상고하겠습니다.
Ⅰ. 예수님께서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심에 대하여 상고합시다(32-33)
A. 본문 33절에 대하여 해석
33절의 “예수님께서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사”라는 의미를 살펴보겠습니다. 이는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시기 전에 나타내신 심성과 감정의 변화를 의미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무덤에 가시기 전에 베다니 마을 입구에서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유대인들이 우는 모습을 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의 눈물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심령에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셨습니다. 통분(痛忿)의 뜻은 ‘아플 통(痛)’자에 ‘분할 분(忿)’자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아프고 분노하셨다는 것입니다. 헬라어 원어에는 에네블리메사토(ἐνεβριμήσατο)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뜻은 ‘매우 분노하다’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마르다와 마리아 그리고 유대인들의 눈물 흘리는 모습을 보시면서, 심령에서부터 매우 가슴아파하시고 매우 분노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영어 성경에는 “deeply moved in spirit”라고 표현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영혼 깊은 곳에서 움직임이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민망(憫惘)의 뜻은 ‘근심할 민(憫)’자에 ‘경황이 없을 망(惘)’자입니다. 예수님께서 민망히 여기셨다는 것은 근심이 생기고 힘드셨다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은 민망하다는 것을 ‘troubled’와 ‘distressed’로 번역하였고, 헬라어는 에타락센(ἐτάραξεν)이라 말합니다. 이는 마음이 동요하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힘들어 하시고 마음이 움직이셨다는 뜻입니다. 즉 예수님께서는 마음에 분노하시고, 마음아파 하시고 힘들어 하셨습니다.
B. 예수님께서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신 이유
예수님께서 마음에 분노하시고 힘들어 하셨다는 통분과 민망함의 기록은 성경에서 찾아보기 매우 어렵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께서 통분히 여기시고 민망히 여기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는 예수님께서 바라보시는 죽음에 대한 시각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죽음과 가족들의 눈물 속에서 인간의 죽음, 인간의 고통, 인간의 아픔을 보셨습니다. 그리고 심령에 통분하셨고 민망해 하셨습니다. 인간이 죄를 지어 타락한 삶을 살아가는 모습과 인간의 삶에 죄와 사망이 왕 노릇하는 모습을 보시면서 느끼신 예수님의 마음이 심령의 통분과 민망함입니다. 거룩한 분노와 안타까움입니다. 히브리서 2:14-15은 예수님께서 혈육에 속하심은 사망의 권세로 두려워하는 인간들을 종노릇하게 하는 마귀를 멸하심이라고 말씀합니다. 로마서 5:12-14은 아담의 죄가 모든 사람에게 들어와 모든 사람이 사망하게 되었다 말씀합니다. 사단은 죽음을 통해 사람들에게 두려움을 주며, 무서움을 주어 인간을 옥죄이고 통치하려 합니다. 이 같은 마귀의 권세, 죽음의 노예가 되어 불행하게 죽고, 슬퍼하고, 사는 인간을 보시고 통분하시고 마음아파 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같은 예수님의 마음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님의 분노는 거룩한 분노이며, 아름다운 분노요, 긍휼의 통분임을 알아야합니다.
Ⅱ.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심에 대하여 살펴봅시다(34-36)
예수님께서는 나사로의 시신을 어디두었느냐고 말씀하셨고 그들은 주여 와서 보시옵소서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습니다(35절). 헬라어 성경은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셨다는 표현을 에다크뤼센(Ἐδάκρυσεν)이라 말합니다. 헬라어에서 표현한 에다크뤼센은 대성통곡이 아닌 눈물을 삼키는 흐느끼는 깊은 마음의 울음입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마음 깊은 곳에서 나오는 사랑의 눈물입니다. 성경은 “예수께서 눈물을 흘리시더라(Jesus wept)”라는 짧은 문장으로 표현합니다. 예수님의 이 눈물 속에는 두 가지 의미가 있습니다.
A. 예수님께서는 완전한 사람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눈물을 통하여 참사랑, 완벽한 인간(Vere Home, True Man)의 모습을 보여 주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사람이시요 100% 인간이십니다. 예수님께서 우셨다는 말 속에는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똑같은 인성(Humanity)을 가지신 참 인간이시라는 의미가 담겨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슬퍼하셨고, 목말라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물가 여인에게 물을 달라고 하셨고, 십자가상에서 목마르다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배고파하셨고, 주무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되심으로 인간의 아픔을 이해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의 지정의를 가지신 완벽한 사람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의 몸으로 성육신(成肉身), 도성인신(道成人身), 수육(受肉), 화육(化肉)하셨습니다. 100%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100% 인간이십니다.
B.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도우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사람으로 오신 이유는 우리를 도우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의 눈물 흘리심은 우리를 향한 긍휼의 표현이며 우리를 능히 도우실 수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셨습니다. 히브리서 2:18에 “자기가 시험을 받아 고난을 당하셨은즉 시험 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시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사람의 경험은 한계성을 가집니다. 사람은 자신이 격어보진 못한 것에 대하여 완벽하게 이해하지 못합니다. 암 환자의 고통은 암 환자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고아들의 아픔은 고아들만 알 수 있습니다. 과부의 고통은 과부만이 이해할 수 있습니다. 출산의 고통은 출산을 해본 여성만이 알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인간이 겪을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아기로 이 땅에 태어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태어나시고 바로 헤롯 왕을 피해 애굽으로 피난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그네와 이방인의 아픔을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지혜와 키가 자라는 인간의 성장과정을 겪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자라는 아이들의 마음을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모님의 말씀에 순종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부모님을 모시는 자녀의 도리를 알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40일간 금식하시고 마귀의 시험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시험을 받으셨고 물질과 명예와 권력의 유혹을 물리치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같은 유혹의 순간에 예수님께 도움을 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제자들에게 배신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동업자나 친한 사람들에게 배신당한 아픔을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버림받으셨습니다(마가복음15:34). 예수님께서는 버려진 고아와 사생아들의 아픔을 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가장 불의한 재판에 의하여 사형판결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억울한 일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도우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사형판결을 받으시고 39대의 채찍질을 당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온 몸이 찢기시며 인간의 아픔과 고난을 경험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모든 고난과 아픔을 알고 계시며 이해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서 죽음을 대면하셨고 죽음을 경험하셨으며 죽음을 이기셨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음 앞에서 두려워하는 우리 인간을 도와주실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인간으로 경험하실 수 있는 모든 것을 경험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능히 도우실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사람의 마음을 이해하십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이 같이 힘들어 하는 인간을 향한 동정과 사랑과 긍휼의 표현입니다. 예수님께서 눈물을 흘리실 때에 사람들은 “보라 그를 어떻게 사랑하였는가”(36절)라고 이야기합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베다니의 나사로를 뛰어넘어 우리 모든 사람을 향한 우주적 사랑의 눈물입니다. 예수님의 눈물은 예수님의 사랑의 표현입니다. 눈물을 흘리시는 예수님의 사랑을 더욱 깊이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Ⅲ. 우리들의 눈물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하나님께서 보시는 우리의 눈물에 대하여 생각해 봅시다.
A.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눈물을 소중히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눈물을 아름답고 귀하게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눈물을 소중히 받아주십니다. 성경에는 소중한 그릇에 담겨지는 두 가지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는 성도의 기도이며, 다른 하나는 성도의 눈물입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금 대접이나 금 향로에 담기어져 천사들의 손에 의하여 하나님의 보좌에 올려드린다고 말씀합니다(계5:8 8:3-4). 성도들의 기도가 금 대접과 금 향로에 담기어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성도들의 기도가 금 그릇에 담을 만큼 소중하고 값어치가 있다는 것입니다. 성도들의 기도는 하나님을 향한 최고의 예물입니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의 기도만큼 소중히 여기시는 것이 또 하나가 있습니다. 바로 성도들의 눈물입니다. 시편56:8은 “나의 유리함을 주께서 계수하셨으니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되지 아니하였나이까”라고 말씀합니다. 다윗은 이 기도 속에서 하나님께서는 눈물병을 가지고 계시고. 그 눈물병에 성도의 눈물을 모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 눈물을 주님의 책에 기록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눈물을 귀하게 여기시고 이를 소중한 예물로 여기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아픔과 고난과 괴로움의 눈물을 기억해두셨다가 하나님의 나라에서 보상해 주십니다.
B. 하나님께서는 눈물의 기도에 져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흘리며 기도하는 성도들을 보시면 약해지십니다. 찰스 스펄전(Charles Haddon Spurgeon)목사는 “우리의 내면에서 솟아나와 눈에서 흘러 나와서 뺨을 타고 흘러내리는 눈물의 기도가 하나님께 드려질 때 그 기도는 하나님을 이길 수 있게 하는 힘을 가져온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눈물로 간구하는 성도들의 우는 소리를 들으시고 우리에게 져주신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의 눈물을 보시고 약해지시고, 져주시고, 긍휼을 베풀어 주십니다. 미국의 복음주의 목회자 찰스 스윈돌(Charles R. Swindoll)목사는 “땅에 떨어진 눈물 한방물이 하늘의 대왕을 불러낸다(A teardrop on earth summons the King of heaven)”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눈물을 보시고 우리에게 져주십니다. 삼무엘상 1장에 보면 엘가나의 첫째 부인인 한나가 임신을 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엘가나의 둘째 부인인 브닌나가 임신을 하게 되었고 한나를 격동시키고 괴롭히고 아픔을 줍니다. 이때 한나는 성전에 나아가 자신의 고통을 하나님께 눈물로 기도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한나의 기도에 응답하셔서 사무엘을 주셨고, 보너스로 사무엘외에도 3남 2녀의 자손의 축복을 더해 주셨습니다. 히스기야 왕은 25세의 나이에 왕이 되었고, 29년을 통치하다 54세에 죽습니다. 히스기야는 하나님앞에 의롭고 진실한 종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39세가 되었을 때, 선지자 이사야로부터 하나님의 메시지를 듣게 됩니다. 히스기야 왕이 죽게 될 것이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때 히스기야 왕은 얼굴을 벽으로 향하여 눈물로 하나님께 기도합니다. 히스기야 왕은 자신이 하나님께 “진실과 전심으로 주 앞에 행하며 주의 보시기에 선하게 행한 것을 기억하옵소서(왕하20:3)”라고 통곡하며, 울며 기도합니다. 그때에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의 눈물을 보시고 15년을 더 살게 해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눈물에 약해지십니다. 져주십니다. 성도들의 눈물은 하나님을 우리의 삶 가운데로 오시도록 초청합니다.
C.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눈물을 씻어주십니다
시편116:8에 “주께서 내 영혼을 사망에서, 내 눈을 눈물에서, 내 발을 넘어짐에서 건지셨나이다”라고 말씀합니다. 시편126:5-6은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정녕 기쁨으로 그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눈물이 변하여 기쁨이 되는 역사를 이루시는 분이십니다. 이사야25:7-8은 “또 이 산에서 모든 민족의 그 가리워진 면박과 열방의 그 덮인 휘장을 제하시며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 주 여호와께서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그 백성의 수치를 온 천하에서 제하시리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셨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7:17은 “이는 보좌 가운데 계신 어린 양이 저희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저희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러라”고 말씀합니다. 요한계시록21:2-4은 “또 내가 보매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니 그 예비한 것이 신부가 남편을 위하여 단장한 것 같더라 내가 들으니 보좌에서 큰 음성이 나서 가로되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들이 울도록 내버려 두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의 눈물을 씻어 주신다고 약속하십니다.
D. 눈물중에서 타인을 위하여 흘리는 눈물이 최고의 눈물입니다
눈물의 기도에도 등급이 있습니다. 나를 위한 눈물은 초급이나 중급단계의 눈물입니다. 하나님의 보시기에 최고등급의 기도, 최고등급의 눈물은 타인을 위한 기도이며, 타인을 위한 눈물입니다. 빌리 그래함(Billy Graham)목사는 “자신을 위해 흘리는 눈물은 약한 눈물이며, 타인을 위하여 흘리는 눈물은 강함의 표지이다(Tears shed for self are tears of weakness, but tears shed for others are a sign of strength)”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자신을 위해 눈물을 흘리는 것이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을 위하여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출애굽기 32장에 보면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십계명을 받으러 시내산에 올라가는 내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이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으로 송아지우상을 만들고, 그 우상을 섬기고 있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서 내려와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섬기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그때 모세는 그들의 죄악을 슬퍼하면서 하나님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출32:32)라고 울며 기도합니다. 모세는 하나님께 이스라엘 백성을 용서하여 주시든지 아니면 자신을 하나님의 생명책에서 지워달라고 한 것입니다. 이 기도는 타인의 죄 용서를 위해 자신을 버리겠다는 사랑의 기도이며, 눈물의 기도입니다. 사도바울은 자신의 형제와 친척의 구원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바울 자신이 저주를 받아 그리스도에게서 끊어져도 괜찮으니, 하나님의 구원이 자신의 형제와 골육과 친척들에게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롬9:3-5). 여기서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께 버림받는 자라 할지라도 타인의 영혼이 구원받기를 소망하는 간절함을 보여줍니다. 성경은 타인을 향한 눈물의 가치가 나를 위한 눈물의 가치보다 크다고 말씀합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시는 최고의 눈물입니다. 모두 다 눈물의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예수님의 눈물에 의미를 깨닫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눈물로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요약: 홍준기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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