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2019-08-18 11:47:20
한충훈 목사 -
그릇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
본문 말씀 : 열왕기하 4장 1-7절
제목: 그릇에 담긴 하나님의 은혜 본문: 열왕기하 4:1-7 설교자: 한충훈목사
서론// 엘리야와 엘리사가 사역했던 때는 시대적으로 어려웠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어려웠던 시대일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더 많이 일어났습니다. 가만히 우리의 신앙도 살펴보면, 어려운 삶을 지나온 것이 힘들었지만, 그것 때문에 은혜받고, 그것 때문에 기적을 경험하고, 그것 때문에 간증거리가 생깁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가 그랬습니다. 시대적으로 어두웠던 암흑기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엘리사를 통해 기적이 일어난 사건중의 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히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선지자의 제자들 중 한 명의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와 어려운 사정을 호소합니다. 들어보니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남편은 죽었고,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빚을 너무 많이 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도 빚 때문에 종으로 팔려가야 되는 그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엘리사가 그 여인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그 여인이 대답하기를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집에 한 병의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그 여인이 지금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가를 잘 알려주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합니다. “가로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3절). 이 말은 가능한 많이 빌려오라는 이야기입니다.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의 말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빈 그릇마다 가득 채워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가능한 많이 빌리라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는 어떤 한계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능한 우리가 준비만 되어 있다면 얼마든지 부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복음서의 오병이어 사건이 연상됩니다.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아주 초라한 오병이어가 주님의 손에 붙잡히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자와 어린아이 외에 남자만 오천 명이 먹었는데, 먹어도 그냥 먹은 것이 아니라 다 베풀리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열두 광주리가 남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열두 광주리를 남게 하셨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기적, 그 은혜는 아슬아슬하게 주시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주신다는 겁니다. 시편 23편 1절, 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5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되 풍성하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Ⅱ. 하나님의 은혜는 빈 그릇을 준비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가난한 과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마음껏 주고 싶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담을 그릇입니다. 기름을 채울 그릇, 빈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은 종종 ‘네가 믿느냐?’라는 질문을 하십니다. 이 질문을 던지시는 요지는 ‘네가 담을 빈 그릇을 준비했느냐?’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실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역사하실 것인데, 그것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대로’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네 믿음의 분량대로’라는 말입니다. 그 분량이 무엇입니까? 그릇의 사이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제한적으로 역사하시지만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중요합니다. 많이 들었던 기독교 예화입니다. 어떤 낚시꾼이 고기를 잡는데, 잡다가 큰 고기가 잡히면 바다에 던져 버리고, 작은 고기만 잡아서 자신의 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그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작은 고기는 놓아주고 큰 고기만 잡는데, 이 사람은 낚시를 반대로 하니까 신기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큰 고기는 버리고 작은 고기만 모읍니까?”라고 묻자 낚시꾼이 대답합니다. “우리 집의 프라이팬이 작은 것밖에 없어서 큰 고기는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사이즈입니다. 그렇니까 아무리 큰 것을 주셔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네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다 네게 주리니’(수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나안을 다 정복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가 발바닥으로 밟아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준비입니다. ‘네가 믿느냐? 네가 준비되어 있느냐? 받을 준비되어 있느냐?’ 주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네 소원대로 될지라’(마15:28). 네가 믿고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싸워야 할 주제 중의 하나는 갇혀 있는 내 안의 한계입니다. 믿음이 자라간다는 것은 우리 한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관대하시고 풍성하시며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준비된 만큼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빈 그릇을 준비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Ⅲ. 빈 그릇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빈 그릇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빈 그릇은 본문의 가난한 과부의 모습입니다. 아무것도 없고 다 상실되어 의지할 이도 없는 상태, 두 자식마저도 빚 때문에 빼앗길 처지의 상태, 그 상태에 놓인 가난한 과부의 모습이 바로 빈 그릇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의지할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밖에 필요한 것이 없는 이 빈 그릇, 이 빈 그릇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면 바로 하나님만을 절실히 갈망하는, 하나님만을 절실하게 기대하는 마음이 빈 그릇의 마음인 것입니다. 시편 42편 1절의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는 시인의 고백은 인간의 내면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뭔가 차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고 밀어냅니다.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까? 영적인 목마름, 갈망, 빈 그릇으로 나오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미국과 같이 기독교 역사가 오래된 곳은 신앙이 대대로 내려왔습니다. 신앙생활이 일종의 문화화되었습니다. 대대로 믿어오던 집안에서는 모든 활동들 안에 신앙적 요소들이 들어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모두 예수님을 믿는 것 같아 보이는데 사실은 다를 수 있습니다. 기도나 예배 의식들은 있지만 그 안에 복음의 생명력은 없습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성경책은 있지만 읽지는 않습니다. 의식은 다 있는데 그냥 형식적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을 향한, 복음에 대한 갈망이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없이 무덤덤한 형식적 신자가 된 것입니다. 신앙의 위기는 익숙함에서 옵니다. 이것이 위험합니다. 익숙함에서 무덤덤함, 무감각증이 오게 되고, 영적둔감증, 영적매너리즘에 빠지고 영적 타성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심각하게 결여되는 것은 다름 아닌 갈망입니다. 주님에 대한, 주님의 은혜에 대한, 말씀에 대한 갈망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지 않는 사람이 아닌 열심히 다니는 성도들 가운데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늘 다니는 교회이고, 늘 드리는 예배이기에 그 안의 기대감이나 영적 깊은 갈증이 없어집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신앙적 경륜과 활동으로 이미 가득 차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빈 그릇을 가져와야 채워질 텐데 이미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세련됨은 있지만 순수함이나 진지함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면 신앙은 점점 더 위험한 상태가 됩니다. 신앙의 연수가 결코 자랑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건강한 신자는 누구입니까? 언제나 배고픈 자로 서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과거에 수없는 은혜를 받았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여전히 배고픈 자처럼,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것조차도 내가 받아야 살겠다고 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갈망은 우리에게서 나온 게 아닙니다. 이 갈망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갈망은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하도록 갈망을 주셨고, 하나님으로만 그 갈망은 채워지도록 하나님께서는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빈 마음,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만 갈망하면서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내가 살 수가 없다는 태도로 주님 앞에 나아오면 그 심령 위에 주님의 물 붓듯이 부으시는 은혜가 임하실 줄 믿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시고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계가 없으십니다. 준비된 대로 채워주십니다. 가난한 만큼 비운 만큼 하나님의 은혜는 더 크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만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날마다 나오셔서 오늘도 부어주시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고 그릇대로 채워지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설교요약 한충훈목사)
서론// 엘리야와 엘리사가 사역했던 때는 시대적으로 어려웠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어려웠던 시대일수록 하나님의 능력은 더 많이 일어났습니다. 가만히 우리의 신앙도 살펴보면, 어려운 삶을 지나온 것이 힘들었지만, 그것 때문에 은혜받고, 그것 때문에 기적을 경험하고, 그것 때문에 간증거리가 생깁니다. 엘리야와 엘리사 시대가 그랬습니다. 시대적으로 어두웠던 암흑기였습니다. 오늘 본문 말씀은 엘리사를 통해 기적이 일어난 사건중의 한 사건입니다. 이 사건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알려주시려고 하는 것이 무엇인지 살펴보겠습니다.
Ⅰ.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풍성히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선지자의 제자들 중 한 명의 아내가 엘리사를 찾아와 어려운 사정을 호소합니다. 들어보니 절망적인 상황입니다. 남편은 죽었고, 어떤 연유인지 모르지만 빚을 너무 많이 지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두 아들도 빚 때문에 종으로 팔려가야 되는 그러한 상황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엘리사가 그 여인에게 말합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고하라’ 그 여인이 대답하기를 ‘계집종의 집에 한 병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집에 한 병의 기름 외에는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은 그 여인이 지금 얼마나 절박한 상황인가를 잘 알려주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합니다. “가로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라 빈 그릇을 빌되 조금 빌지 말고’(3절). 이 말은 가능한 많이 빌려오라는 이야기입니다. 여인은 엘리사 선지자의 말대로 했습니다. 그러자 빈 그릇마다 가득 채워지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엘리사 선지자의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가능한 많이 빌리라는 말씀 속에는 하나님의 은혜가 얼마나 풍성한가를 가르쳐 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주시는 은혜는 어떤 한계도 갖고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가능한 우리가 준비만 되어 있다면 얼마든지 부어줄 수 있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을 살펴보면 복음서의 오병이어 사건이 연상됩니다. 보리떡 다섯 개, 물고기 두 마리, 아주 초라한 오병이어가 주님의 손에 붙잡히니까 어떻게 되었습니까? 여자와 어린아이 외에 남자만 오천 명이 먹었는데, 먹어도 그냥 먹은 것이 아니라 다 베풀리 먹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열두 광주리가 남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열두 광주리를 남게 하셨을까요? 바로 하나님께서 베풀어 주시는 기적, 그 은혜는 아슬아슬하게 주시는 것이 아니고 풍성하게 주신다는 겁니다. 시편 23편 1절, 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1절),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5절).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은혜를 주시되 풍성하게 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Ⅱ. 하나님의 은혜는 빈 그릇을 준비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지금 가난한 과부는 하나님의 은혜를 입을 절호의 기회가 왔습니다. 그리고 선지자는 마음껏 주고 싶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무엇입니까? 담을 그릇입니다. 기름을 채울 그릇, 빈 그릇을 준비하는 것입니다. 복음서를 보면 주님은 종종 ‘네가 믿느냐?’라는 질문을 하십니다. 이 질문을 던지시는 요지는 ‘네가 담을 빈 그릇을 준비했느냐?’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역사하실 것인데, 하나님께서 은혜로 역사하실 것인데, 그것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느냐는 말입니다. 그러면서 주님께서는 ‘네 믿음대로 될지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네 믿음대로’라는 말은 무슨 뜻입니까? ‘네 믿음의 분량대로’라는 말입니다. 그 분량이 무엇입니까? 그릇의 사이즈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제한적으로 역사하시지만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중요합니다. 많이 들었던 기독교 예화입니다. 어떤 낚시꾼이 고기를 잡는데, 잡다가 큰 고기가 잡히면 바다에 던져 버리고, 작은 고기만 잡아서 자신의 바구니에 넣었습니다. 옆에 있던 사람이 그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겼습니다. 왜냐하면 보통 작은 고기는 놓아주고 큰 고기만 잡는데, 이 사람은 낚시를 반대로 하니까 신기하게 여겼던 것입니다. 그래서 물었습니다. “왜 큰 고기는 버리고 작은 고기만 모읍니까?”라고 묻자 낚시꾼이 대답합니다. “우리 집의 프라이팬이 작은 것밖에 없어서 큰 고기는 가져갈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의 사이즈입니다. 그렇니까 아무리 큰 것을 주셔도 받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네 발바닥으로 밟는 땅을 다 네게 주리니’(수1:3)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가나안을 다 정복해 놓으셨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너가 발바닥으로 밟아가야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준비입니다. ‘네가 믿느냐? 네가 준비되어 있느냐? 받을 준비되어 있느냐?’ 주님께서는 가나안 여인에게 그러한 이야기를 하셨습니다. ‘네 소원대로 될지라’(마15:28). 네가 믿고 바라는 대로 이루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제한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생활에서 싸워야 할 주제 중의 하나는 갇혀 있는 내 안의 한계입니다. 믿음이 자라간다는 것은 우리 한계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관대하시고 풍성하시며 부족함이 없으신 분이십니다. 그런데 준비된 만큼 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우리의 믿음의 분량이 중요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빈 그릇을 준비한 사람만이 받을 수 있습니다.
Ⅲ. 빈 그릇은 하나님을 갈망하는 마음입니다.
우리가 하나님 앞에 나아갈 때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빈 그릇이 중요합니다. 그리고 빈 그릇은 본문의 가난한 과부의 모습입니다. 아무것도 없고 다 상실되어 의지할 이도 없는 상태, 두 자식마저도 빚 때문에 빼앗길 처지의 상태, 그 상태에 놓인 가난한 과부의 모습이 바로 빈 그릇인 것입니다. 아무것도 의지할 것도 없고, 내세울 것도 없고, 자랑할 것도 없는, 오직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밖에 필요한 것이 없는 이 빈 그릇, 이 빈 그릇을 오늘 우리에게 적용해 본다면 바로 하나님만을 절실히 갈망하는, 하나님만을 절실하게 기대하는 마음이 빈 그릇의 마음인 것입니다. 시편 42편 1절의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니이다”라는 시인의 고백은 인간의 내면을 가장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뭔가 차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축복을 바라지도 않고 기대하지도 않고 밀어냅니다. 받아들일 수가 없습니다. 그들에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면 누구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임합니까? 영적인 목마름, 갈망, 빈 그릇으로 나오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하나님에 대한 기대감으로 가득 차 있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미국과 같이 기독교 역사가 오래된 곳은 신앙이 대대로 내려왔습니다. 신앙생활이 일종의 문화화되었습니다. 대대로 믿어오던 집안에서는 모든 활동들 안에 신앙적 요소들이 들어 있습니다. 겉으로 보면 모두 예수님을 믿는 것 같아 보이는데 사실은 다를 수 있습니다. 기도나 예배 의식들은 있지만 그 안에 복음의 생명력은 없습니다. 대대로 내려오는 성경책은 있지만 읽지는 않습니다. 의식은 다 있는데 그냥 형식적입니다. 거기에는 하나님을 향한, 복음에 대한 갈망이 없습니다. 정말 하나님을 찾는 마음이 없이 무덤덤한 형식적 신자가 된 것입니다. 신앙의 위기는 익숙함에서 옵니다. 이것이 위험합니다. 익숙함에서 무덤덤함, 무감각증이 오게 되고, 영적둔감증, 영적매너리즘에 빠지고 영적 타성주의에 빠지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안에 심각하게 결여되는 것은 다름 아닌 갈망입니다. 주님에 대한, 주님의 은혜에 대한, 말씀에 대한 갈망입니다. 이러한 현상은 교회를 열심히 다니지 않는 사람이 아닌 열심히 다니는 성도들 가운데 일어날 수 있는 현상입니다. 늘 다니는 교회이고, 늘 드리는 예배이기에 그 안의 기대감이나 영적 깊은 갈증이 없어집니다. 오랜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신앙적 경륜과 활동으로 이미 가득 차 있는 상태가 되는 것입니다. 빈 그릇을 가져와야 채워질 텐데 이미 무엇인가로 가득 차 있는 상태인 것입니다. 세련됨은 있지만 순수함이나 진지함이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러면 신앙은 점점 더 위험한 상태가 됩니다. 신앙의 연수가 결코 자랑이 될 수 없음을 깨닫는 것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건강한 신자는 누구입니까? 언제나 배고픈 자로 서 있는 사람입니다. 내가 수십 년 동안 신앙생활을 하고 과거에 수없는 은혜를 받았지만 여전히 어린아이처럼, 여전히 배고픈 자처럼, 주인의 밥상에서 떨어진 것조차도 내가 받아야 살겠다고 하는 수로보니게 여인의 태도가 있어야 합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갈망은 우리에게서 나온 게 아닙니다. 이 갈망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입니다. 그리고 그 갈망은 이 세상의 것으로 채워질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하도록 갈망을 주셨고, 하나님으로만 그 갈망은 채워지도록 하나님께서는 만들어 놓으셨습니다. 빈 마음, 가난한 마음으로 하나님만 갈망하면서 주님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내가 살 수가 없다는 태도로 주님 앞에 나아오면 그 심령 위에 주님의 물 붓듯이 부으시는 은혜가 임하실 줄 믿습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자비로우시고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한계가 없으십니다. 준비된 대로 채워주십니다. 가난한 만큼 비운 만큼 하나님의 은혜는 더 크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하나님만을 갈망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면 주실 줄로 믿습니다. 가난한 마음으로 주님 앞에 날마다 나오셔서 오늘도 부어주시는 풍성한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고 그릇대로 채워지는 은혜가 있게 되기를 주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설교요약 한충훈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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