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오늘의 만나(가정예배)
3월 16일 찬송/ 338장(새 364장) 본문/ 습2:1-7 제목:진노와 심판을 피하는 방법
본문은 온 세상에 임할 하나님의 심판 앞에서 수치를 모르는 백성에게 회개를 촉구하며 시작합니다. ‘수치를 모르는 백성’ 즉 우상 숭배자, 불신자, 무신론자들을 향해 2번씩 강조하고 계십니다. 여호와의 진노가 임하는 분노의 날이 오기 전에 모이라는 것입니다. 모여야 하는 이유는 심판 날에 숨김을 받고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는 기회를 얻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나 악인들은 서로 모일지라도 어떤 대책도 세우지 못하고 멸망할 수밖에 없습니다. “악인은 피차 손을 잡을지라도 벌을 면치 못할 것이나 의인의 자손은 구원을 얻으리라(잠11:21).” 스바냐는 말씀에 순종해야 하는 사람들을 유대인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에게 확대합니다. 여호와를 찾지 않는 유대인이나 이방 열국들은 심판을 피할 수 없다고 하며 먼저, 블레셋의 심판이 언급됩니다. 여호와의 날에 대한 말씀은 절망스러우나 선지자 스바냐는 그 가운데 소망을 제시합니다. 여호와의 분노의 날에 숨김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여호와를 찾고 공의와 겸손을 구하는 것입니다. 그 방법은 어떤 기상천외한 방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답게 공의와 겸손으로 살아가기를 힘쓰시기는 바랍니다.
3월 17일 찬송/ 533장(새 484장) 본문/ 습2:8-15 제목:교만, 멸망의 지름길
본문은 모압과 암몬 그리고 구스와 앗수르의 멸망에 대한 말씀입니다. 이 민족들은 이스라엘 민족을 훼방하며 방해하는 나라들로 알려져 있습니다. ‘찔레가 난’다는 것, ‘소금 구덩이가 된’다는 것, ‘영원히 황무하리’라는 표현들은 모압과 암몬의 멸절을 표현한 것입니다. 모압과 암몬의 멸망은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구스는 에디오피아를 의미하는데 그 나라 역시 하나님의 백성을 박해하는데 무죄하지 않았습니다. 구스의 죄가 다른 나라에 비해 경미하여 ‘너희도 내 칼에 살육을 당하리라’고 하며 역사상 애굽과 달리 미약한 나라로 남아있으나 그들의 멸망은 모두 교만 때문입니다. ‘오직 나만 있고 다른 이가 없다’는 심리는 사람 마음 가운데 부지중에 깊이 뿌리 박혀있어 사람들은 경계해야 합니다. 교만하면 강국이라도 망하는데 개인들이야 말할 것이 무엇이겠습니까! 성경은 말씀합니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잠16:18)”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잠11:2).” 교만한 자를 물리시고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주신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다시 한번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월 18일 찬송/ 97장(새 97장) 본문/ 습 3:1-13 제목:가난한 백성의 유익
주변 나라들에 대한 메시지가 다시 하나님의 백성에게 향합니다. 하나님의 백성이 거하는 예루살렘이 그들의 죄로 인해 심판을 받으나 열방 가운데 남은 자가 있어 그들은 회복될 것이라고 합니다. 많은 환난과 징계의 심판을 통과한 남은 자들은 반드시 정화되어 교만하지 않고 하나님을 경외하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선지자 스바냐는 이렇게 정화된 백성들의 복에 대하여 말씀하는데 그 이유는 먼저, 그들은 ‘가난한 백성’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복음을 믿는 자가 세상에서는 그 믿음 때문에 환난과 핍박을 당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이 세상에서 가장 불쌍하게 보이는 비참한 처지에 있게 되는 것이 보통입니다. 그런 사람들은 하나님을 위하고 세상을 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세력 앞에 압제를 당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사람들의 이름은 대회로 인하여 근심하는 자, 하나님 백성의 치욕을 자기의 무거운 짐으로 아는 자, 쫓겨난 자, 저는 자. 수욕하는 자라고 지칭됩니다. 이러한 사람들은 ‘여호와의 이름을 의탁함’으로 오직 살아계신 하나님만 의지하여 구원을 얻게 됩니다. 하나님만 한 분 만을 의지하여 하나님의 보호 아래 사시는 삶되시기 바랍니다.
3월 19일 찬송/ 32장(새 48장) 본문/ 습3:14-20 제목:기뻐해야 할 이유
본문은 하나님 백성이 기뻐해야 될 것을 권면하는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날의 두렵고 절망적이었던 모습이 본문에서는 갑작스럽게 기뻐하고 즐거운 모습으로 변합니다. 하나님은 예루살렘의 지독한 범죄에도 불구하고 그들을 정화시키셔서 새롭게 하십니다. 그리고 이제 예루살렘을 향하여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럼 여기서 무엇을 즐거워하라고 말씀하고 있을까요? 그것은 은혜를 즐거워하라고 하십니다. 하나님의 심판의 불로 예루살렘 가운데 있는 악한 요소를 제거되고 이스라엘의 화평한 삶을 허락하셔서 새롭게 하신 이 은혜를 즐거워하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당한 치욕 때문에 절기를 지키러 나오지 못하고 그것을 무거운 짐으로 여기며 근심하는 사람들에게 마음껏 절기를 지킬 수 있도록 해 주십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와 회복해 약속으로 기뻐할 것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예루살렘만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인 우리 모두를 향하여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근심하는 자에게 주시는 약속과 은혜로 말미암아 기뻐해야 할 것입니다.
3월 20일 찬송/ 217장(새 425장) 본문/ 학1:1-15 제목:삶의 우선 순위
학개의 중심 내용은 무너진 성전을 재건축하는 사역에 초점이 맞춰져 있습니다. 고레스에 의하여 귀환되어진 유다 백성들은 귀환 후 성전재건이 허락되었습니다. 본문은 포로귀환한 이스라엘 공동체가 성전을 재건해야 할 이유가 무엇인지 분명히 밝혀주고 있습니다. 성전재건은 포로 귀환 후 이스라엘 공동체의 회복과 하나님의 언약의 성취를 나타내는 중요한 사건이기 때문 입니다. 학개 선지자 당시 유대인들은 원수들의 방해와 시기상조라는 이유로 성전 건축을 중단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무슨 일이든지 하다가 난관을 당하면 흔히 이와 같이 핑계를 대곤합니다. 이것은 기회주의에 속하는 것으로 흔히 무력한 자들이 이런 말을 하게 됩니다. 어떤 일이 하나님의 허락이 아닌 경우에 시기상조라는 말로 중단되는 경우도 있으나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일이라면 난관이 있어도 시기상조라는 핑계로 중단할 것이 아니라 마땅히 계속해야 할 것입니다. 어떤 일에 계속 여부는 난관의 유무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향한 성의의 유무에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당한 흉년은 하나님의 전이 황무하였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이 자기 집 에만 열중하였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죄는 다른 것이 아니라 그들이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들의 사사로운 일을 더욱 중요시하였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일보다 자기를 더 사랑할 때 언제나 하나님 앞에서 꾸지람을 당할 죄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3월 21일 찬송/ 248장(새 550장) 본문/ 학2:1-9 제목:과거, 현재 그리고 미래의 의미
예루살렘으로 귀환한 공동체 중 솔로몬 성전의 찬란함을 기억하던 노년층에게 스룹바벨 성전은 초라하기 이를 때 없어 보였습니다. 이러한 낙담과 비교의 감정 속에 있는 백성에게 주어진 하나님의 응답의 말씀입니다. “만국을 진동시키리라”(7절)는 말은 정치적 격변만이 아니라, 역사의 주권이 하나님께 있음을 선언하는 종말론적 언어이며 “만국의 보배”는 하나님의 임재가 가져오는 궁극적 가치를 의미합니다. 여기 “나중 영광”은 건축의 규모가 아니라, 하나님이 거하심으로 드러나는 영광의 질적 차원으로 그것은 “평강(샬롬)”입니다. 이는 단순한 전쟁의 부재가 아니라, 관계·존재·미래가 회복된 상태를 뜻합니다. 인간은 기억으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문제는 기억이 종종 현재를 왜곡한다는 점입니다. 과거의 영광은 미화되고, 현재는 과소평가 되곤합니다.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인간을 “과거와 미래 사이에 놓인 존재”라고 했습니다. 학개 선지자 당시 백성들은 바로 그 사이에서 길을 잃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과거와 비교하지 말고, 내가 지금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보라.” 사람들도 종종 이렇게 말합니다. “예전 교회가 더 좋았어” “젊었을 때가 전부였지”“한때는 잘 나갔는데…” 과거를 부정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이시지만 미래를 과거의 그림자로 살지 말라고 하십니다. 신앙은 추억을 붙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 속에서 하나님을 신뢰하는 용기입니다.
(작성: 방선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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