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노창영 목사 -
룻기강해(Ⅳ):보아스와 룻의 역사적 만남
본문 말씀 : 룻기 2:1-7
제목: 룻기강해(Ⅳ):보아스와 룻의 역사적 만남 본문: 룻기 2:1-7 설교자: 노창영목사
서론// 하나님께 예배하는 모든 성도님들 위에 하늘의 축복이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은 룻기 강해의 네 번째 시간입니다. 오늘 본문은 룻기 2:1-7의 말씀입니다. 룻기 1장에서는 엘리멜렉과 그의 부인 나오미가 풍족한 재산을 유지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과 명령을 어기고 가나안 땅을 떠나 안락하게 보이는 꿈의 땅 모압으로 이민을 하게 됩니다. 그러나 이 가정이 모압땅에 우거했을 때 남편과 두 아들이 죽게 됩니다. 그리고 남은 사람은 나오미와 모압 여자인 두 며느리였습니다. 빈털터리가 된 나오미와 큰 자부 룻은 베들레헴에 돌아오게 됩니다. 나오미와 룻이 베들레헴에 돌아왔을 때는 보리추수의 시기였습니다. 이때 모압 여자 룻은 이삭줍기를 하면서 유력한 사람 보아스를 만나게 됩니다. 오늘은 유력한 자 보아스와 모압 여자 룻의 역사적 만남을 중심으로 설교하겠습니다.
Ⅰ. 먼저, 유력한 자 보아스와 모압 여인 룻에 대한 기본적인 묘사를 살펴 봅시다(2:1-2)
오늘 본문에는 처음으로 보아스가 등장합니다.
A. 성경은 보아스(Boaz)에 대하여 두가지를 기록하고 있습니다(1절)
①보아스는 엘리멜렉의 친족이라는 것입니다
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과 두 아들은 모압땅에서 죽었습니다. 엘리멜렉의 대가 끊긴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남자를 통한 기업의 승계가 대단히 중요했습니다. 베들레헴에는 엘리멜렉의 친족 중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 친족은 바로 보아스였습니다. 본문에 기록된 친족의 의미는 어떤 집안의 기업을 대신 승계할 사람입니다. 보아스의 등장은 그가 앞으로 엘리멜렉의 대를 이어갈 기업 무를 자의 가능성을 예고합니다.
②보아스는 유력(有力)한 자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유력한 자」라는 의미는 돈이 많다는 의미도 있지만 힘이 있다, 강하다, 혹은 능력이 있다는 뜻입니다. 히브리어로는 기보르 하일(ליִחַ רובֹּגִּ)입니다. 이 용어는 전쟁 영웅이나 구원자, 재판관등을 표현할 때 사용합니다. 영어성경 NASB는 a man of great wealth(큰 부자)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영어성경(NLT)에는 a man of wealth and influential man(부유할 뿐 아니라 영향력이 있는 인물)이라고 번역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보아스(Boaz)라는 이름은 그 안에 힘과 능력이라는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보아스는 유력한 자 곧 부요한, 능력 있는, 영향력 있는 인물임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보아스가 무너진 엘레멜렉의 집안에 구원과 소생함을 줄 수 있는 어떤 가능성과 영향력을 암시해주고 있습니다.
B. 룻(Ruth)에 대하여 살펴 보겠습니다(2절)
2장2절 앞에 보면 룻의 이름 앞에 「모압 여인」이라는 수식어가 붙습니다. 룻은 모압 여인 즉, 이방여인입니다. 모압 여인이라는 단어를 통해 우리는 룻의 긴박하고 어려운 처지를 알 수 있습니다. 룻이 만일 품행이 단정하지 못한 과부였다면 시어머니를 섬기지 않고 다른 남자를 만나거나 딴짓하고 돌아 다녔을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품행이 단정했습니다. 현숙한 여인이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에게 생계를 위하여 이삭줍기를 하러 밭에 나가도 되는지를 묻습니다. 룻은 시어머니에게 허락을 구했습니다. 그러자 나오미는 허락해줍니다.
이스라엘에서는 추수 때 어떤 곡식이든 밭모퉁이까지 다 베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떨어진 이삭을 다시 줍지 않았습니다. 또한 잊은 단뭉치는 다시 가지러 가지 않았습니다. 포도열매를 추수할 때도 땅에 떨어진 포도를 줍지 않았고, 포도를 거둘 때도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것은 다 거두지 않고 남겨두었습니다. 감람나무(올리브나무)를 거둘 때도 나무를 흔들어 열매를 취했는데 떨고 나서 나무에 남아 있는 열매는 거두지 않았습니다. 이는 빈자와 과부와 나그네와 고아와 타국인을 위해서 남겨둔 것입니다(레 19:9-10, 신 24:19-22). 이것이 이스라엘의 사랑과 배려의 율법입니다. 이 율법은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사회적인 약자에 대한 배려입니다. 그러나 시간이 흘러가면서 약자들을 배려하는 법이 상실되었습니다. 사사시대에는 밭주인이나 책임사환이 이삭줍기가 필요한 자들에게 이삭을 줍지 못하게 했거나 이삭을 줍는 사람들에게 냉대했던 것으로 추정됩니다. 2절에 기록된 「은혜를 입으면」이라는 의미는 그 당시에 이삭줍기를 힘들게 한 밭주인들이 있었음을 보여줍니다. 이삭줍기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들은 그 밭의 주인에게 은혜를 입어야 이삭을 주울 수 있었습니다. 이삭줍기에 해당되는 첫 번째 우선순위는 룻 같은 여인이었습니다. 룻은 빈자요, 과부요, 나그네 중에서도 유대나그네가 아닌 타국인 이방나그네였습니다. 룻은 이처럼 최악의 상황에서 이삭줍기를 합니다.
C. 보아스와 룻의 관계와 기독론적 유비
유력한 자 보아스와 모압 여자 룻의 관계 속에는 신학적 관계의 도식이 담겨있습니다. 유력한 자 보아스는 은혜를 베푸는 자이며 부유할 뿐 아니라 영향력이 있는 자입니다. 보아스는 더 나아가 전능자이며 구속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여주는 완벽한 그림입니다. 그리고 가장 무력한 모압 여자 룻은 이삭을 줍는 가난한자요 미래가 없고, 무력하고, 냉대당하는 이방 여인 같은 죄인 된 나를 보여줍니다.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와 무력한 죄인의 관계는 기독교의 은혜와 구원의 도식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관계를 맺었던 사람들은 룻과 같이 연약하고, 무력한 자였습니다. 예수님 앞의 베드로, 수로보니게 여인, 바디매오, 삭개오, 강도, 바울과 같이 우리도 은혜를 받아야 사는 자들입니다. 믿음 생활은 룻이 보아스에게 은혜를 입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살아가는 것입니다. 룻이 보아스의 은혜를 입듯이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고 살아가는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Ⅱ. 둘째로, 보아스와 룻의 역사적 만남을 살펴 보겠습니다(3-4a절)
A. 우리의 삶에 우연은 없습니다
사람들은 만남을 통하여 인생이 달라집니다. 그 만남을 통해 역사를 만듭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면서 어떤 부모를 만나고, 어떤 친구를 만나고, 어떤 멘토를 만나고, 어떤 배우자를 만나는지에 따라서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그래서 만남이 정말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만남을 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는 일상생활 속에서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은혜와 인도하심을 발견해야 합니다. 오래 전에 불광동의 판잣집에 살고 있던 장로님 한 분이 계셨습니다. 이 장로님은 이사를 가기 위하여 자신의 판잣집을 복덕방에 집을 내놓았습니다. 장로님께서 복덕방에 갔다가 집으로 돌아와 보니 집이 다 불에 타고 있었습니다. 순식간에 불이 붙은 집은 얼마후에 잿더미가 되었습니다. 동네 사람들은 그 장로님을 항하여 교회를 다니고 예수를 믿는다더니 재앙만 받는다고 손가락질하고 비난했습니다. 장로님께서는 이 어려운 때에 계속 기도를 했습니다. 이 장로님이 하루는 불이 탄 집을 정리하려고 잿더미가 된 집터에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구들장 밑에 불에 그슬린 낡은 궤가 보여서 궤를 열어보니 그 안에는 금괴가 가득히 들어 있었습니다. 아마 일제강점기 때나 6.25때 누군가가 그 집에 살다가 도망을 치면서 그 곳에 금괴를 숨겨놓은 것으로 보입니다. 결국 장로님은 그 금괴를 가지고 큰 빌딩을 지었고 큰 부자가 되었습니다. 인생에 행복이나 불행이 와도 그 안에는 하나님의 섭리가 있습니다. 우리 삶에는 우연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획은 가장 정확합니다. 우리의 일상적인 만나과 대화 속에도 하나님의 세미한 인도가 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오래전에 모라비아 선교단체에 속해 있던 조지 스미스라는 선교사님이 있었습니다. 그는 아프리카 선교를 위해 오랫 동안 기도로 준비했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아프리카선교사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선교하러간 지역의 아프리카의 원주민들은 외부인에게 아주 배타적이었습니다. 결국 그는 몇 달 만에 그 마을에서 추방을 당합니다. 그는 그 곳에 다시 들어가지 못했고 그들의 구원을 위해 계속 기도하다가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됩니다. 그가 몇 달간 선교지에서 한 일은 늙은 여자 한 명을 전도한 것이 전부였습니다. 시간이 흘러 나중에 선교사들이 그 부족에게 들어가 선교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사실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이미 그 부족안에 13,000명의 크리스천이 있었던 것입니다. 실패한줄 알았던 그의 선교는 그가 전도한 한 늙은 여인을 통하여 열매 맺게 됩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섭리입니다. 롬8:28대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모든 것이 협력하여 선을 이룹니다.
B. 보아스와 룻의 놀라운 만남(3-4a절)
보아스와 룻의 만남은 일상적인 만남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평범한 만남은 역사적인 만남이 됩니다. 그들이 만남 속에는 하나님의 인도하심과 섭리가 있었습니다. 본문3,4절의 키워드는 「우연히」와「마침」입니다. 룻은 이삭을 주으러 가다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서 이삭을 줍게 되었습니다. 룻이 이삭을 줍고 있을 때 마침 베들레헴성읍에 살고 있던 보아스가 추수중인 자기의 보리밭을 보러 왔습니다.
①룻은 이삭을 주우려고 다니다가 「우연히」 보아스의 밭에 들어갑니다.
히브리원어에 「우연히」라는 단어를 사용하지 않고 있으나 우연히라고 번역된 말씀은 이 만남이 의도적이지 않았다는 상태를 표현하기 위해 번역의 흐름을 위해 사용한 것입니다. 영어성경은 「happened」로 번역했습니다. 일상적 만남속에 우연히 역사적인 사건이 벌어졌다는 것입니다.
② 보아스는 베들레헴성읍에 살고 있습니다.
그는 추수중인 자신의 보리밭을 보기 위하여 야외의 들판으로 왔습니다. 룻이 별생각 없이 이삭을 주우려고 보아스의 밭에 왔을 때, 「마침」보아스가 왔습니다. 하나님의 타이밍입니다. 「마침」은 영어성경에서 Now Behold(자, 보라)라고 번역되어 있습니다. 지금 이 특별한 사건을 보라는 것입니다. 보아스와 룻의 만남은 일상적인 만남 속에서 이루어졌으나 이는 하나님의 섭리였습니다. 보아스와 룻의 만남은 결혼으로 이어지게 되고, 그들은 오벳을 낳고, 이 족보는 다윗왕과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로 이어집니다. 이처럼 우리의 만남은 그 어떤 사건도 하나님의 뜻이 없으면 생기지 않습니다. 절대로 우연은 없습니다. 우리의 일상생활이 우연처럼 보이지만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이 우리의 삶을 인도하십니다. 우리는 일상적인 만남 속에서 하나님의 섭리와 손길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섭리의 손길을 보시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Ⅲ. 본문의 성경말씀은 보아스와 룻에 대하여 평가해 주고 있습니다(4-7절)
A. 보아스에 대한 성경의 평가를 살펴 보겠습니다(4-5절)
① 보아스는 자기 밭의 경영에 관심이 있었습니다(4a절)
보아스가 살고 있던 곳은 베들레헴성읍이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직접 한참 추수중에 있는 밭을 보려고 성읍에서 보리밭까지 왔습니다. 그는 자신의 기업 경영에 관심을 가졌습니다. 그의 마음은 보리밭에 있었습니다. 그는 자기 사업에 충실하고 정직했습니다. 이것이 보아스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보아스가 가지고 있는 CEO의 마인드를 볼 수 있습니다. 로마의 문인 플리니우스(Plinius)는 풍성한 곡식의 결실은 농사꾼의 눈(eyes)에 달려있다고 말했습니다. 농사꾼은 부지런히 자기 밭을 살펴야합니다. 어떤 아프리카 농사꾼이 그리스의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les)에게 어떤 거름을 밭에 주어야 농사가 잘 될 수 있겠느냐고 물었습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그 농사꾼에게 농사를 잘 짓는 비결은 농사꾼의 발자국에 달려있다고 답했습니다. 이 발자국은 밭을 사랑하는 농사꾼의 마음을 보여줍니다. 보아스는 보리추수의 때에 자신의 밭에 갔습니다. 보아스가 자신의 밭에 갔다는 것은 농사를 사랑하는 그의 직업적 충실성을 보여줍니다. 잠언 27:23에 네 양 떼의 형편을 부지런히 살피며 네 소 떼에게 마음을 두라고 했습니다. CEO나 사업가는 자신의 사업장을 부지런히 살피고 그 곳에 마음을 두어야 합니다.
② 보아스는 축복의 사람이었습니다(4b절)
보아스는 자신의 밭에서 곡식을 베는 자들에게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하시기를 원하노라고 축복의 말을 합니다. 그러자 그들이 보아스에게 여호와께서 당신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나이다라고 응답합니다. 우리는 이들의 대화 속에서 고용주와 일꾼사이의 영적 교감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는 밭 베는 자들의 축복의 말을 통해서 평소 보아스에 대한 그들의 평판을 알 수 있습니다. 이들의 관계는 아름다운 노사관계였습니다. 한국유리의 창업주 최태섭장로님은 평안도 사람입니다. 그는 돈을 벌기 위해서 일찍 중국의 봉천(지금의 심양)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비누사업을 시작하였는데 그의 사업이 점점 발전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사업을 통해 돈을 많이 벌게 되었고 기업은 점점 번창했습니다. 그 때 중국의 공산당 팔로군이 들어와서 기업주였던 그를 인민재판에 세웠습니다. 그의 기업에서 일하고 있던 중국인 직원중 한 명이 우리 사장님은 다른 공장과 달리 매일 점심을 제공하고, 이익을 분배하고, 넉넉하게 우리를 살펴주셨으며 절대로 나쁜 사람이 아니라고 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자 많은 사람이 그 직원의 말에 찬성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최태섭장로를 죽이지 못하고 광속에 가두게 되었습니다. 결국 최태섭장로님은 많은 사람의 도움으로 광에서 빠져 나오게 됩니다. 이는 최태섭장로님과 직원들의 축복과 교통을 보여주는 이야기입니다. 우리는 기업이나 직장에서 축복을 빌어주고 축복을 받는 관계를 가져야 합니다.
③보아스는 이삭줍는 하찮은 모압 여자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5-6절)
모압 여인인 룻은 이방여자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이방 여인은 관심 밖의 사람입니다. 그러나 보아스는 자기 밭에 들어온 한 이방 여자를 보았습니다. 그리고 보아스는 곡식을 베는 자들을 책임 맡은 사환에게 이 소녀가 누구냐고 묻습니다. 보아스는 사회적인 약자인 모압에서 온 이방 여자에게 관심을 가졌습니다. 보아스는 약자를 배려했습니다. 우리는 약자를 향하여 아주 섬세한 영적인 시각으로 다가가고 도와주어야 합니다.
B. 룻에 대한 성경의 평가를 살펴보겠습니다(7절)
보아스의 사환은 룻이 누구냐고 묻는 보아스 앞에서 룻에 대하여 두 가지를 말합니다.
①룻은 이삭줍기에 적극적이라는 것입니다(7a절)
이삭줍기는 보통 밭의 한 구역의 추수가 다 끝나고 나서야 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룻은 생계가 걸려 있었기 때문에 아주 적극적이었습니다. 룻은 보아스의 사환에게 베는 자들이 곡식을 추수할 때 그 단 사이에서 바로 이삭을 주울 수 있도록 해달라고 적극적으로 요청했습니다. 룻은 시어머니를 부양해야하는 책임이 있었습니다. 적극적으로 이삭줍기에 나섰습니다.
②룻은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7b절)
사환은 룻이 아침부터 지금(점심시간)까지 잠깐 집에서 쉬는 것 외에는 이삭줍기를 계속하는 중이라고 말하였습니다. 룻은 아침부터 낮까지 계속 일하였습니다. 룻은 그 집(움막이나 임시거처)에서 잠깐 쉬는 것 외에는 일하기를 계속했습니다. 이삭줍는 일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이삭을 줍기 위해서는 허리를 굽혀야 합니다. 땅에 떨어진 이삭을 줍는 일은 섬세하고 손이 많이 가는 일입니다. 룻은 쉽지 않은 이 일을 아침부터 낮까지 계속했습니다. 룻은 부지런한 여자였습니다. 한국인들의 노동시간은 계산상으로는 세계최장을 자랑합니다. 그러나 최장시간을 일하는 것에 비해 노동집약효율성은 세계최저입니다. 많은 근로자들이 근무시간에 노는 것입니다. 사람들이 제대로 일을 하지 않고 집약적으로 일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나 룻은 정직하고 부지런한 여자였습니다.
보아스와 룻은 성경에서 가장 아름다운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C. 우리 인생에 대한 하나님의 평가
보아스와 룻에 대한 아름다운 평가처럼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평가가 중요합니다. 우리는 인생을 살아가면서 어떤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평가하고 계십니까?
①성경의 나쁜 평가들
구약의 나발은 갈멜 족속이요 육축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양 3,000마리와 염소 1,000마리를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완고하였고 악한 사람이었다고 평가하고 있습니다(삼상25:2-3). 또한 다윗왕의 큰 아들 암논은 요나답의 친구였습니다. 요나답은 심히 간교한 자라고 평가합니다(삼하13;3). 암논의 인생은 요나답으로 인하여 무너지고 결국 죽음까지 가게 됩니다.
②성경의 좋은 평가들
성경을 보면 또한 좋은 평가를 받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아는 하나님께 은혜를 입은 자였고, 의인이요, 당대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한 자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창6:8-9). 욥은 순전하고 정직하며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떠난 자라고 평가하고 있습니다(욥1:1).
우리는 모두 다 예외 없이 하나님께 평가를 받습니다. 우리의 삶과 행동에 따라 평가를 받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속일 수 없습니다. 보아스와 룻과 같이 하나님께로 부터 아름다운 평가를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결론// 유력한 보아스에게 나아간 모압 여자 룻의 마음으로 전능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기 위하여 그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의 놀라우신 섭리의 손길을 믿고 그 인도를 받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으로부터 가장 아름다운 평가를 받는 성도님들이 다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요약: 이이레전도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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