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정영택 목사 -
나무에 오르는 사람
본문 말씀 : 누가복음 19:1-7
서론//
오늘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성공을 원합니다. 그리고 그 성공을 흔히 “올라갔다.”라고 표현하며, 성공을 위해 달려가는 과정을 “오르려고 한다.”고 말합니다. 여러분은 지금 어디까지 올라갔다고 생각하십니까? 그 올라간 자리에서 참된 평안, 쉼, 그리고 안정을 누리고 있습니까? 아니면 지금도 여전히 ‘더 올라가야 한다.’는 압박감 때문에 지금도 애쓰고, 고민하며 기도하고 계십니까? 과연 인간의 ‘올라감’은 우리의 신앙에 어떤 의미와 도전을 주고 있습니까? 이 질문을 생각하면서 오늘의 본문 말씀을 함께 보시겠습니다.
Ⅰ.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눅 19:4)
본문 1~4절 중, 4절에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가니”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 이야기의 주인공은 삭개오입니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그는 이미 올라간“ 사람입니다. 세리장(세무서장이나 세무고급 관리)이며, 부자였기에 올라갈 만큼 올라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가 돌 무화과나무에 올라갑니다. 왜 무엇 때문이었을까요? 성경은 그 이유를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즉, 아무리 권력과 재물이 많아도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작음”의 문제 때문에 그랬다는 것입니다. 이는 결국 세상에서 아무리 높이 올라가도 자신의 내면적이고, 실존적이고 심리적인 여러 ‘작음’의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줍니다. 따라서 오늘 말씀은 단순히 삭개오라는 한 인물을 이야기 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그가 왜 나무에 오를 수밖에 없었는지, 그리고 그 오름이 예수를 믿는 우리에게 어떤 도전과 의미를 주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 무엇보다도 중요한 것은 세상적인 “오름”은 나름대로의 성공이자 자랑이며 능력일 수 있으나 인간의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아무리 세리장이고 부자라 할지라도 사람들 앞에서 ‘작음’으로 다가오는 비난과 외로움, 열등감 그리고 죄의 문제들은 내가 세상에서 올라간 것을 가지고는 해결할 수 없습니다. 그렇기에 세상에서 아무리 높이 올라가고, 올라가도록 견고하게 쌓았다 해도 결국 무너져 내릴 한갓 ‘바벨탑’에 불과합니다.
둘째, 진정한 올라감의 목적과 가치가 무엇인지 점검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예수를 보고자 함”이어야 합니다. 삭개오가 나무에 오른 것은 나의 어떠함이나 내가 올라간 자리를 과시하거나 자랑함이 아니라 오직 “예수님을 보고자 함”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올라가야 하는 첫째 이유입니다. 성도 여러분, 진정으로 그렇습니까? 오늘 우리가 이 예배의 자리에 올라온 것이 “예수님을 보고자 함”이며 “말씀을 듣고자 함”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까? 정말입니까? 혹시 여전히 돈과 권력, 명예와 일류, 큰 집과 건강을 바라보며 올라오시진 않았습니까?
셋째, 여기서 아주 중요한 것이 있는데, “오직 예수님만을 향해 올라간” 그 자리가 주님께서 찾아오시는 자리이며 주님의 음성을 듣는, 거룩하신 하나님과의 영적 스파이크(접촉)가 일어나는 “은혜의 거점이며 자리”라는 것입니다. 삭개오는 주님을 보기 위해 정신없이 나무 위로 올라갔지만, 주님께서 그를 보시고 “내려오너라. 내가 네 집에 가겠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보다 앞서 찾아오시는 주님의 선행하시는 은혜이며 아버지의 영접이며, 십자가의 사랑입니다.
넷째, 올라감과 동시에 반드시 “내려감”의 순종이 있어야 합니다. 삭개오의 신앙은 나무 위로 올라간 것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에 “내려옴”으로 순종하고, 그 내려옴을 통해 진정한 회개와 사랑의 역사를 이루게 됩니다. 오늘날 우리 그리스도인의 문제는 “올라감”만을 갈망할 뿐, 주님 앞에 낮아지는 “내려감”의 능력을 상실했다는 데 있습니다. “내려감”은 예수님이 하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의 역사, 낮아지심으로 생명을 살리신 십자가의 능력입니다.
결론//
이제, 이 말씀 앞에서 우리는 어떤 결단을 내려야 하겠습니다. 무엇보다도 나의 “올라감”은 무엇을 위한 것이며, 그 목적이 무엇인지 살피는 철저한 자기 성찰이 필요합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아직도 세상적이고 정욕적이며, 무너지기 쉬운 바벨탑을 쌓기 위해 오르고 있지 않습니까?
여러분이 서 있는 그 오름의 자리가 주님을 인격적으로 만나는 “은혜의 자리이며 지점”인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만약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삶의 자리 어디로 내려가 “주님의 사람으로서 자원함으로 헌신하며 쓰임 받아야 하는지 살펴야 합니다. 동시에 오늘 우리의 예배 자리, 바로 이 교회가 삭개오가 올라갔던 돌 무화과나무와 같은 은혜의 자리, 회개의 자리, 축복의 자리가 되어야 합니다. 마치 야곱이 돌베개를 베고 자던 거칠 고 외로운 땅 ‘루스’가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며 ‘벧엘’이 된 것처럼 말입니다.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우리의 오름을 끝내고 은혜의 나무에 오르는 크리스천,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내려감의 용기로 다시 쓰임 받는 축복된 크리스천, 그 은혜 속에 승리하는 자리가 바로 오늘의 돌 무화과나무인 개봉교회와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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