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노창영 목사 -
주기도문강해(Ⅴ):용서
본문 말씀 : 마태복음 6:9-13
주일설교요약
제목: 주기도문강해(Ⅴ)
본문: 마태복음 6:9-13
2025. 11. 23(주일)
설교자: 노창영 목사
서론// 주기도문은 하나님의 나라와 뜻을 구하는 상향적 기도와 이 땅의 필요를 구하는 하향적 기도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하향적 기도는 일용할 양식을 구하는 것이 가장 우선 순위에 있고, 다음으로 용서와 화해입니다. 예수님께서 이같은 하향적 기도의 두 번째로 용서의 부분을 간구하도록 가르치신 이유는 인간사회에서 가장 풀기 힘든 부분이 바로 서로 상처를 주고 받는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오늘은 이같은 하향적 기도의 두 번째 간구인 용서에 대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주기도문의 가장 강력한 기도 응답의 장애물은 바로 용서하지 못하는 마음입니다. 예수님의 주기도문의 가르침 바로 뒤에 이어지는 마6:14~15에 보면 기도를 가로막는 가장 큰 요인이 바로 용서하지 못한 죄임을 말씀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우리 과실을 용서하신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마6:12은「①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는 자를 용서하여 준 것 같이 ② 우리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의 두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어서 하나님의 용서와 우리의 용서는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음을 말씀합니다. 본문은 하나님께서 용서하셨으니 너도 남을 용서하라는 순리적 문법구조가 아니라 남을 용서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도 너를 용서하지 않으신다는 치환적 문법구조로 되어있습니다. 이는 용서의 중요성을 크게 강조하시는 예수님의 가르침입니다. 용서의 기도는 하늘의 문을 엽니다. 인간 사이의 응어리와 원한이 하나님의 축복을 가로막습니다. 욥이 곤경에서 돌아서게 된 것은 귀로 듣던 하나님을 눈으로 보는 영적 깨달음에서 온 것이 아니라 욥이 자기를 비난한 세 친구와 번제를 드렸고 세 친구를 위하여 화목과 용서의 기도를 드렸기 때문입니다(욥42:5-10). 땅에서 묶인 것이 풀어져야 하늘의 축복이 열립니다.
I.「용서」의 근거에 대하여(6:12a)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사하여 주옵시고”라는 말씀 속에서 우리가 누군가를 용서할 수 있는 근거와 뿌리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의 죄를 용서하셨다는 사실입니다. 이같은 하나님의 용서는 2가지의 기초가 있습니다.
A. 하나님 아버지의 용서하심
누가복음 15장의 탕자의 비유는 하나님의 용서가 얼마나 넓고 깊은지를 보여줍니다. 아버지께 자기 분깃을 받아 집을 떠나 먼 나라에 가서 허랑방탕하여 모든 것을 잃고 돌아온 둘째 아들을 보고 아버지는 아들의 죄와 과거를 따지지 않고 비난하지 않고 묻지 않고 조건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 줍니다. 아버지가 달려나가 아들의 목을 안고 입을 맞추고 있는 그대로 받아준 것처럼 하나님의 용서는 무조건적입니다. 시편103:10-12에서도 “우리의 죄를 따라 처치하지 아니하시며 우리의 죄악을 따라 갚지 아니하셨으니 이는 하늘이 땅에서 높음같이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 그 인자하심이 크심이로다 동이 서에서 먼 것같이 우리 죄과를 우리에게 멀리 옮기셨으니”라고 다윗은 고백했습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할 수 있는 첫 번째 근거는 바로 이같은 하나님의 용서에 있습니다.
B.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이같이 우리를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사랑이 나타난 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곧 죄사함입니다(엡1:7). 예수님께서는 우리의 죄에 대한 댓가로 생명의 핏값, 곧 속전(몸값, Ransom, λυτρον)을 지불하심으로 우리를 구속하셨습니다(딤전2:6). 원래 속전은 노예시장에서 노예를 살 때 치르는 노예의 몸값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지은 인간의 몸값인 속전으로 아들 예수님의 생명의 피를 주셨습니다. 그리스도의 피는 우리의 죄를 씻고(요일1:7), 해방을 줍니다(계1:5). 우리의 영혼을 조상의 유전한 망령된 행실에서 구속하는 능력입니다(벧전1:18-19).
이같이 죄사함을 얻은 사람은 성령의 선물(행2:38-39)과 유쾌함의 선물(행3:19)을 받습니다. 이 성령님의 역사와 유쾌함이 바로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하고 용납하는 하늘의 능력입니다.
Ⅱ.「용서」의 실천에 대하여(6:12b)
본문 마6:12에서 죄는「오페일레마(ὀϕειλήμα)」로 ‘채무, 갚아야 할 빚’이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할 때 우리는「피해자(채권자)」가 되고, 우리에게 죄지은 자는「가해자(채무자)」가 됩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죄사하심을 입는 사람은 내게 죄지은 자(내게 빚진 자)를 용서해야 합니다.
A. 채무관계와「용서」의 원리(마18:21-35)
예수님께서는「용서」에 대해 1만 달란트의 빚을 탕감받은 종의 비유로 설명하십니다. 이 비유에 나오는 한 종은 도저히 갚을 수 없는 1만 달란트의 빚(수조~수십조원, 상환불가의 빚)을 왕에게 탕감 받았음에도 자신에게 1백 데나리온(1,000~2,000만원)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았습니다. 이 비유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상환 불가능한 죄의 빚을 진 1만 달란트 빚진 자와 같습니다. 내게 죄지은 사람의 죄는 상환이 가능한 1백 데나리온의 빚과 같습니다. 상환 불가능한 죄의 빚을 하나님께 탕감받은 자에 비하면 우리에게 죄지은 자의 빚은 지극히 작은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하셨다면 우리는 다른 사람의 작은 죄의 빚을 탕감하고 용서해야 합니다.
B. 내게 빚진 자들을 향한 나의 반응
우리가 남에게 상처를 받을 때 보복과 용서로 반응합니다. 먼저 보복은 양성적 보복과 음성적 보복이라는 두 가지 모습으로 나타납니다. 양성적 보복은 욕, 악한 행동, 고소, 폭력, 살인 등으로 되갚으려는 강한 보복적 반응이고, 음성적 보복은 외면적으로는 조용하지만 미움, 원망, 포기, 스트레스 등으로 쌓아두는 반응입니다. 양성적 보복이나 음성적 보복은 동전의 양면과 같아서 똑같은 것입니다. 미움이 살인이 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요일3:15). 보복적 반응은 모두 결국 자신을 파괴합니다. 다음으로 용서란 내게 상처를 준 사람을 용서하는 일인데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러나 용서할 수 있는 힘은 하나님께서 주실 때 가능합니다.
C. 성경에 나타난 용서들과 그 메시지
성경은 용서가 우리의 삶에서 실천 가능한 일임을 여러 인물을 통해 보여 줍니다. 요셉은 자신을 죽이려고 했고 애굽에 팔아넘긴 형제들을 22년만에 만나 용서하며, 자신을 애굽으로 보낸 자는 형들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며 하나님께서 그를 먼저 애굽으로 앞서 보내셔서 형들과 그 자손을 보존하게 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원수된 사울 왕, 사울의 군대장관 아브넬, 쿠테타를 일으킨 아들 압살롬과 그의 군대장관 아마샤를 용서하고 끌어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자신을 십자가에 못박은 자들을 향하여 저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라고 기도하십니다(눅22:34). 스데반 집사는 돌에 맞아 죽으면서 이 죄를 저들에게 돌리지 말아주옵소서라고 기도했습니다(행7:60). 또한 사도 바울은 ①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② 모든 사람 앞에서 선한 일을 도모하며, ③ 할 수만 있으면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하라고 하였고, ④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고 말씀합니다(롬12:17-21). 이같은 성경의 용서들은 우리의 용서를 자극하고 격려합니다.
결론// 오늘 설교 내용인 다섯 번째 간구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하지 못한다면 하나님께서도 우리 죄를 사하지 않으신다는 강력한 하나님의 도전의 메시지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용서된 우리들은 죄사함을 통해 얻은 성령의 선물과 유쾌함으로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용서할 수 있는 기도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 죄를 사하신 하나님의 사랑으로 우리에게 죄지은 자를 사해 줄 수 있는 그리스도인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설교요약: 방선영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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