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노창영 목사 -
마태복음 1장 강해(Ⅲ):두 이름 예수와 임마누엘
본문 말씀 : 마태복음 1:18-25
● 주일설교요약
제목: 마태복음 1장 강해(Ⅲ)/본문: 마태복음 1:18-25/설교자: 노창영 목사
I. 서론: 성탄의 주인공이신 예수 그리스도
이 복된 성탄절에 우리가 집중해야 할 대상은 오직 성탄하신 예수 그리스도 한 분 뿐입니다. 지난 두 주간 동안 마태복음 1장을 강해하면서 족보를 통해 그 안에 담긴 신학과 메시지, 그리고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게 된 경위를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마태복음 1장의 결론으로 주님의 탄생 사건에서 가장 중요한 예수님의 두 이름에 대해 상고해보고자 합니다.
우리는 종종 성탄의 주변 인물인 요셉이나 마리아에게 시선을 빼앗기곤 합니다. 물론 그들은 경건하고 순종적인 하나님의 종들이었으나 성탄의 주인공은 결코 아닙니다. 그들은 단지 주님의 탄생을 돕기 위해 예비된 산파 역할을 한 인물들일 뿐입니다. 우리의 예수님을 향한 믿음의 눈이 곁눈질을 하거나 희석되어서는 안 됩니다. 오직 그리스도만을 바라보고 경배하고 높여 드려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천사는 요셉에게 현몽하여 성령으로 잉태된 아기의 이름을 두 가지로 계시합니다. 21절에 나타난 ‘예수’와 23절에 나타난 ‘임마누엘’입니다. 이 이름들은 단순히 사람이 지은 명칭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직접 주어진 특별한 이름들입니다. 세상의 기업들이나 학교나 인물들이 그 이름만으로 브랜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라는 이름 안에는 그의 사역과 인격, 그리고 영적인 가치가 온전히 담겨 있습니다.
II. 첫 번째 이름 예수: 우리를 죄에서 구원할 자(1:21)
A. 예수라는 이름의 뜻과 의미에 대하여
「예수」라는 이름의 독특함은 그 가치가 곧 사역(Mission)에 있다는 것입니다. 히브리어로는 '예수아' 혹은 ‘여호수아’와 동의어이며, 이는 ‘여호와께서 구원이시다’라는 뜻을 지닙니다. 헬라어로는 '예수스', 영어로는 '지저스(Jesus)'라고 부르는 이 이름은 곧 구원자(Redeemer)를 의미합니다.
B. 예수님의 이름을 말한 본문 풀이
본문 21절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한다라는 이 이름의 목적을 명확히 밝힙니다.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 여기서 우리는 몇 가지 중요한 신학적 원리를 발견합니다.
① 하나님께서는 죄로부터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본문에 언급된 죄는 헬라어로 ‘하마르티아(Hamartia)’라고 합니다. 이는 과녁을 빗나가는 것을 의미합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의와 진리라는 표준을 향해 화살을 쏘지만, 모두가 빗나가고 마는 현실을 보여줍니다. 다니엘서 5장에서 벨사살 왕에게 말씀하신 ‘데겔’이라는 말처럼, 하나님의 저울에 달렸을 때 모든 인간은 부족함이 드러날 수밖에 없는 존재입니다.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들은 잘못된 방향, 잘못된 삶으로 가고 있습니다.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을 넘어, 아담 때부터 내려온 강력한 성향과 힘입니다. 우리는 스스로의 힘으로 이 죄의 능력에서 벗어날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께서 흘리신 피만이 우리를 구속하시고 그를 믿음으로 의롭다고 인정해 주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은혜로 우리를 건져주실 수 있습니다.
② 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his people)을 구하십니다. 구원은 사람에게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로 부터 옵니다. 하나님께 주도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시고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그 분의 소유된 백성으로 삼으셨기에 가능한 일입니다(출 19:5-6, 벧전 2:9-10).
C. 죄에서의 구원은 인류 최고의 기쁨의 소식입니다(눅 2:10-11)
과거 활빈 교회를 사역하던 김진홍 목사님은 폐결핵에 걸린 한 남자를 도와서 병을 고쳐주었음에도 불구하고, 그 사람의 속사람은 변하지 않았고 결국 그는 술과 폭력으로 다시 돌아가 그의 가정은 풍지박살이 났다고 간증합니다. 외형적인 조건(건강, 경제력, 상담, 복지, 환경개선)이 좋아진다고 해서 사람이 행복해지는 것은 아닙니다. 돼지를 씻겨 놓아도 다시 진흙탕으로 돌아가듯 인간의 본성이 변하지 않으면 비극은 반복됩니다. 진정한 복음은 단순히 삶의 질을 높이는 상대적인 소식이 아니라 죄로부터의 근원적인 자유를 주는 것입니다.
D. 예수님의 성탄과 구유
예수님의 탄생 소식은 온 백성에게 미칠 큰 기쁨의 좋은 소식, 즉 복음(Euangelion)입니다. 이 복음은 천사보다 더 뛰어나고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최고의 가치를 뛰어넘는 복음입니다. 하지만 이 기쁨의 이면에는 예수님의 비하(Humility)가 있습니다. 만왕의 왕이신 예수님께서 자기를 비우시고 인간의 몸을 입고 육축의 먹이통인 구유(Manger)에 누우셨습니다. 이 구유에는 신학이 있습니다.
초대교회 교부 오리게네스(Origenes)는 예수님께서는 동물들이 구유에서 먹듯이 인류의 생명의 양식이 되기 위해 구유에 오셨다고 했으며, 암브로시우스(Ambrosius)는 유대인과 이방인 모두가 함께 먹는 하나된 밥상 공동체로서의 구유를 말했습니다. 어거스틴(Augustinus)은 하늘도 담을 수 없는 광대하신 예수님께서 자신을 스스로 비우시고(Self-empty) 구유라는 작은 공간에 임하셨음을 강조했습니다. 결국 구유는 장차 예수님께서 지실 십자가 고난을 암시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고난과 죽음을 통하여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신 것입니다. 성탄절은 아들을 보내신 아버지의 아픔과 우리를 구원하시는 기쁨이 공존하는 날입니다.
E. 예수님의 이름의 능력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얻는다고 말씀하셨습니다(롬 10:13). 십자가에 함께 달린 한 강도는 ‘예수여, 당신의 나라에 임하실 때에 나를 생각하소서(눅 23:39-43)’라고 고백하였고 구원을 얻게 됩니다. 「예수」라는 그 이름에는 구원의 능력이 있습니다(빌 2:5-11).
III. 두 번째 이름 임마누엘: 우리와 함께하시는 하나님(1:22-23)
A. 구약 예언의 성취
본문 22절에는 주께서 선지자로 하신 말씀을 이루려 하심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사야 7:14에 보면 한 예언이 기록되어 있는데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는 말씀입니다. 이는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God with us)라는 뜻인데, 23절은 이 예언을 인용하며 이 말씀이 성취되었음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구약시대에도 임시적, 시대적, 간헐적으로 자신의 임재를 나타내셨습니다. 야곱이 벧엘에서 하늘 사닥다리를 보았을 때(창 23:12, 17-19), 요셉이 애굽 땅에서 고난받을 때에 그와 함께하심으로 그를 형통케 하셨을 때(창 39:1-6), 모세와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하시겠다고 약속하셨을 때, 성막의 구름기둥과 불기둥 속에서, 다윗의 목자의 시(시 23편) 등에서 임마누엘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임마누엘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그림자요 예고편에 불과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모든 예언의 완벽한 성취로 우리에게 오셨습니다.
B. 육신이 되신 하나님(요 1:9-18)
본래 하나님은 보이지도 아니하시고 만질 수도 없는 초월적인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영접하고 대화하며 만질 수 있는 존재가 되기 위해 사람의 몸을 입고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성육신(Incarnation)입니다. 말씀이 육신이 된 신비의 사건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버킹검궁전이나 엘리제궁이나 백악관같은 화려한 궁전이 아니라 누구나 접근할 수 있는 소박한 구유에 오셨습니다. 우리가 영접할 수 있는 형태로 사람의 몸을 입고 오신 것입니다. 이는 어린아이 뿐 아니라 낮은 자들까지도 하나님을 만날 수 있게 하기 위함입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는 약속은 바로 이 임마누엘 주님을 우리 안에 모셔 들이는 것을 의미합니다.
IV. 결론: 성탄의 은혜를 누리는 삶
마태복음은 1장에서 임마누엘로 시작하여, 마지막 28장에서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는 말씀으로 끝을 맺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우리와 영원히 함께하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을 부를 때 죄 용서와 구원의 능력을 체험하게 됩니다. 우리가 임마누엘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영접할 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복을 누리게 됩니다. 이 성탄절에 「예수」와 「임마누엘」이라는 두 이름을 믿고 부르고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구원하신 예수님을 경배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곁에 와 계시는 하나님을 신뢰하시기 바랍니다. 성탄의 은혜가 모든 성도들 위에 충만하시기를 축원합니다.
| 번호 | 제목 | 설교일 | 성경말씀 | 설교자 | 첨부 파일 | 조회수 |
|---|---|---|---|---|---|---|
| 703 | 종말성도의 준비품목(Ⅱ):달란트 | 2026-02-01 | 마태복음 25:14-30 | 노창영 목사 | 38 | |
| 702 | 종말성도의 준비품목(Ⅰ):기름 | 2026-01-25 | 마태복음 25:1-13 | 노창영 목사 | 55 | |
| 701 |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 | 2026-01-18 | 요한복음 12:42-43, 19:38-42 | 노창영 목사 |
|
60 |
| 700 | 공허함을 채우는 것들 | 2026-01-11 | 마태복음 12:38-45,창세기 1:1-2,요한복음 7:37-39 | 노창영 목사 |
|
95 |
| 699 | 생명의 양식을 풍성히 먹는 교회 | 2026-01-04 | 요한복음 10:7-10,28-29 | 노창영 목사 |
|
96 |
| 698 | 그리스도인의 제자도 | 2025-12-28 | 누가복음 14:25-35 | 노창영 목사 |
|
103 |
| 697 | 마태복음 1장 강해(Ⅲ):두 이름 예수와 임마누엘 | 2025-12-25 | 마태복음 1:18-25 | 노창영 목사 |
|
109 |
| 696 | 마태복음 1장 강해(Ⅱ):왕되신 예수님의 탄생 | 2025-12-21 | 마태복음 1:18-25 | 노창영 목사 |
|
99 |
| 695 | 마태복음 1장 강해(Ⅰ):족보와 설교 | 2025-12-14 | 마태복음 1:1-17 | 노창영 목사 |
|
122 |
| 694 | 주기도문강해(Ⅶ):나라와 권세와 영광, 아멘 | 2025-12-07 | 마태복음 6:9-13 | 노창영 목사 |
|
135 |
| 693 | 주기도문강해(Ⅵ):시험과 악에서의 구원 | 2025-11-30 | 마태복음 6:9-13 | 노창영 목사 |
|
144 |
| 692 | 주기도문강해(Ⅴ):용서 | 2025-11-23 | 마태복음 6:9-13 | 노창영 목사 |
|
146 |
| 691 | 욥의 고난과 감사의 심리학 | 2025-11-16 | 욥기 1:20-22,2:9-10,3:1,23:1-5,42:5-6,42:10 | 노창영 목사 |
|
216 |
| 690 | 가루와 이십병의 역사 | 2025-11-09 | 열왕기하 4:38-44 | 노창영 목사 |
|
218 |
| 689 | 주기도문강해(Ⅳ): 일용할 양식 | 2025-11-02 | 마태복음 6:9-13 | 노창영 목사 |
|
241 |


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