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노창영 목사 -
그리스도인의 제자도
본문 말씀 : 누가복음 14:25-35
주일설교요약
제목: 그리스도인의 제자도
본문: 누가복음 14:25-35
2025. 12. 28(주일)
설교자: 노창영 목사
서론// 그리스도인의 참된 제자도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상징적인 고백인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No Turning Back)'는 1800년대 중반 인도 북동부의 아삼(Assam)주의 한 가족으로부터 시작되었습니다. 이들은 부족 전체가 이방 신을 섬기는 척박한 환경 속에서 유일하게 복음을 받아들였고, 이로 인해 부족민들로부터 목숨을 위협받는 극심한 박해를 당하게 되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가장을 끌어내어 신앙을 버리지 않으면 자녀들을 죽이겠다고 협박했지만, 그는 "주님 뜻대로 살기로 했네, 뒤돌아서지 않겠네"라고 대답하며 결연히 맞섰습니다. 결국 자녀들이 죽임을 당하고 아내까지 죽이겠다는 위협이 이어졌지만, 그는 "아무도 함께 하지 않아도 나는 주님을 따르겠다"며 고백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마지막으로 자신의 목숨마저 위태로운 순간에 그는 "세상은 뒤로하고 십자가는 앞에 있네"라는 말을 남기고 온 가족과 함께 순교의 길을 걸었습니다. 이 실화는 참된 제자란 어떤 위협 속에서도 세상으로 돌아가지 않고 오직 십자가만을 바라보며 걷는 사람임을 우리에게 일깨워 줍니다.
Ⅰ. 무리와 제자의 차이 – 변치 않는 헌신(14:25)
예수님의 사역 현장에는 항상 수천 명에 달하는 '허다한 무리(Large Crowds, 오클로이 폴로이)'가 그 분을 따랐습니다,. 하지만 주님께서는 그들을 향해 무리와 제자는 분명히 다르다는 사실을 강조하셨습니다. 무리는 예수님의 기적과 복음에 환호하며 박수를 보내는 '팬(Fan)'에 가깝습니다. 그러나 진정한 제자는 그 이상의 헌신을 요구받습니다.
팬과 제자의 결정적인 차이는 상황에 따라 변하지 않는 믿음의 태도에 있습니다. 팬은 자신이 지지하는 대상이 좋은 이미지를 보여줄 때는 열광하지만, 기대가 어긋나거나 더 매력적인 대상이 나타나면 금세 변심하곤 합니다. 정치적 지지자들이 정책의 변화에 따라 비난으로 돌아서거나, 대중이 연예인의 실망스러운 모습에 등을 돌리듯이 말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단순히 주님의 기적에 박수를 보내는 팬이 되는 과정이 아니라, 자신의 전 존재를 걸고 주님의 뒤를 따르는 철저한 제자가 되는 길입니다.
Ⅱ.제자됨의 대가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대가가 따르며 예수님께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A. 제자의 첫 번째 대가 - 관계의 우선순위 재정립(14:26)
예수님께서는 제자가 되기 위한 첫 번째 대가로 부모와 처자, 형제와 자매, 심지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할 것'을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미워하다(Hate, 미세오)'라는 표현은 단순한 감정적인 증오를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주님과의 관계를 삶의 최우선순위에 두기 위해, 그 어떤 소중한 인간적 집착도 내려놓고 필요하다면 단절까지도 감수하는 결단을 의미합니다.
인간에게는 물질적인 재산뿐만 아니라 가족이나 친구 사이의 유대감, 사회적 평판과 같은 '관계적 재산'이 존재합니다. 하지만 주님을 따르는 길에서 때로는 우리가 가장 사랑하는 가족이나 공동체가 가장 큰 방해물이 되기도 합니다. 참된 제자는 이러한 혈육의 정이나 공동체의 압박이 주님을 향한 순종을 가로막을 때, 이를 단호히 뛰어넘어 주님을 선택하는 관계의 재정립을 이뤄내야 합니다.
전통적인 유교 집안에서 복음을 받아들인 한 청년은 신학교에 가려 할 때 부모님으로부터 호적을 파내겠다는 위협과 유산을 포기하라는 압박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주님을 따랐고, 그의 진실한 헌신에 감동한 아버지는 결국 세상을 떠나기 전 예수님을 믿고 세례를 받는 영적 열매를 맺게 되었습니다.
또한, 여호와의 증인 리더로 활동하며 사회적 기반을 닦았던 한 인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성을 깨닫고 즉시 개종했습니다, 그는 개종 후 가족들의 핍박과 공동체의 외면은 물론, 생계 수단이었던 사업체의 지원이 중단되는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습니다. 제자가 된다는 것은 이처럼 자신이 의지해 온 혈연적, 사회적 재산권에 대한 철저한 단절을 감수하고서라도 주님만을 붙드는 것입니다.
B. 제자의 두 번째 대가 – 모든 소유와의 작별(14:33)
주님께서는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않으면 능히 제자가 되지 못한다고 단언하셨습니다,. 여기서 '버린다'는 의미의 헬라어 '아포타세타이'는 '작별을 고하다(Goodbye)'라는 깊은 뜻을 담고 있습니다. 즉, 제자는 자신이 손에 쥐고 있는 물질적, 비물질적 자산들에 대해 언제든지 기쁘게 작별 인사를 할 수 있는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합니다.
성경 속 베드로와 안드레는 생업의 도구였던 그물을, 야고보와 요한은 배와 아버지를 즉시 버려두고 주님을 따랐습니다. 세리 레위 역시 자신의 직업적 기반을 과감히 던져버리고 주님의 부름에 응답했습니다. 반면, 많은 계명을 지켰던 부자 관원은 자신의 재산과 작별하지 못해 결국 근심하며 돌아갔습니다,. 태국의 한 선교사 부부는 막대한 유산을 포기함으로써 오히려 부모님에게 물질이 아닌 참된 신앙의 가치를 증명해 보였고, 결국 부모님을 구원하는 길로 인도했습니다. 내 소유를 움켜쥐고 있는 손을 펴야만 주님의 손을 온전히 잡을 수 있습니다.
C. 제자의 세 번째 대가 – 자기 부정의 십자가(14:27)
세 번째로 요구되는 대가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삶입니다. 당시 십자가를 진다는 것은 사형 판결을 받았음을 의미하며, 이는 곧 '철저한 자기 부정(Self-denial)'과 자아의 죽음을 상징합니다, 제자는 자신의 명예, 자존심, 과시욕, 지위를 날마다 십자가에 못 박고 오직 주님만이 삶의 주인이 되게 하는 사람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일은 거창한 순교의 현장에서뿐만 아니라 소소한 일상 속에서 더 치열하게 일어납니다. 선교지에 가지 못하고 3년 동안 시어머니의 혹독한 시집살이를 견뎌야 했던 한 자매의 고백처럼, 일상에서 자신의 자아와 자존심을 죽이며 순종하는 것이 때로는 더 큰 고통과 인내를 요구할 수 있습니다. 제자가 되는 길은 단 한 번의 결단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매일의 삶 속에서 자신의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지속적인 과정입니다.
Ⅲ. 영적 회계사의 자세(14:28-32)
그리스도인들은 자신의 제자됨이 참된 제자의 인정, 영생, 구원의 축복을 얻을 수 있는 가치가 있는 것인지를 계산해야 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제자도에 대하여 두 가지 예를 들어 말씀하셨습니다.
①.예수님 당시에 포도원과 곡물을 감시하는 망대와 군사용감시망대가 흔히 있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가 망대(Tower)를 세우고자 하면 자기가 가진 예산(건축비용)이 준공하기까지 족할는지 먼저 앉아서 그 비용을 예산하지 않겠느냐(Count the costs)고 말씀하시면서 비용을 부족하게 계산하여 공사를 시작하여 기초만 쌓으면 보는 자가 다 비웃지 않겠느냐고 하셨습니다(14:28-30).
②.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어느 임금이 일만군사로 이만군사를 가진 다른 임금과 싸우러 나갈 때 자신의 병력으로 적의 병력과 대적하여 이길 수 있는지 헤아려서 승리가 불가능하면 적이 멀리 있을 때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해야 된다는 말씀을 하셨습니다(14:31-32).
제자란 영적 회계사가 되어야 합니다. 자신의 제자됨의 현재 헌신이 하나님의 기준에 합당한가를 계산하여 살아가라는 말씀입니다. 사도 바울은 자기가 가진 배경, 가문, 지위, 학식을 예수 그리스도를 위하여 배설물로 알고 헌신된 제자로 살아 갔습니다(빌3:5-9). 제자들은 영적 회계사가 되어야 합니다.
Ⅳ. 제자와 소금
예수님께서는 참된 제자도를 소금에 비유하시면서 가르쳐 주셨습니다(14:34-35). 요즘의 장로교 설교자중에 행위구원을 강조하면서 이르미니안주의(Arminianism)의 성향으로 흐르는 분들이 있습니다. 이들은 믿음이 아니라 행위로 구원받으며 한번 받은 구원도 예수님을 부인하면 잃어버릴 수 있다는 설교를 합니다. 요즈음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사회 윤리적으로 너무 낮은 레벨로 내려가 있기 때문에 행위를 강조하는 이 같은 설교흐름이 있습니다. 이 같은 설교가 나오게 된 이유는 이해가 됩니다. 그러나 이 같은 것은 잘못된 설교입니다. 영혼없는 몸이 죽은 것 같이 행위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며, 믿음에는 행위가 뒤따르며 행위로 믿음이 온전케 된다는 야고보서 2장의 말씀은 이신칭의의 교리를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행위없는 믿음에 대한 하나님의 철퇴입니다.
소금은 좋은 것이지만 맛을 잃으면 버려 집니다. 농사를 위해 땅에 적당한 소금을 넣으면 미생물작용을 촉진시키고 해충을 억제하여 땅을 기름지게 하고, 거름에 적당한 소금을 넣으면 부패속도가 둔화되고 악취를 해소시켜 농사에 도움을 줍니다. 맛을 잃은 소금이 땅에 버려져 사람들에게 짓밟히듯이(마5:13) 제자됨의 맛을 잃은 사람들은 세상사람의 비웃음거리가 됩니다.
결론//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관계적 자산의 단절, 소유물의 포기,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결단입니다. 나의 제자됨이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가를 계산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따르는 일을 삶의 최우선 가치로 알고 맛을 내는 소금같이 세상에 영향을 주는 제자로 살아 가시기를 바랍니다.
(설교요약: 박용선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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