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2018-08-12 11:42:40

최병문 목사
하나님의 불붙은 사랑

본문 말씀 : 호세아 11장 1-9절

서론// 올해는 광복 73주년 되는 날입니다. 광복을 위해 임시정부의 활동, 만주·연해주에서 무장투쟁, 하와이·미국에서 외교활동, 국내에서 비밀리 독립운동후원, 연합군의 일본 히로시마·나가사키 원자폭탄투하, 수많은 젊은 장병들의 전쟁터에서 목숨을 잃어 오늘 광복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 배후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랑의 책입니다. 인류를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잘 표현해 주는 것이 호세아서입니다. 호세아서 전반부에는 고멜과의 결혼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떻게 사랑하셨는지 잘 보여 줍니다. 이 같은 하나님의 사랑이 어떻게 변화되는지 11장에서 분명하게 보여 줍니다. 본문에 드러난 하나님의 사랑을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Ⅰ. 하나님께서 우리를 자녀로 부르셨습니다(호11:1).
1절은 이스라엘이 어렸을 때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시절이라고 말합니다. 영적 아이였던 시절입니다. 영적 아이였을 때, 영적 아이는 영적인 젖을 스스로 먹는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먹여 주어야 합니다. 과거 이스라엘은 스스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지 못했습니다. 그들을 출애굽 시켜 주어야 할 지도자가 필요했습니다. 스스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했는데, 모세를 통해서 하나님의 인도를 받아야 했을 영적 어린 아이와 같은 시절을 보냈습니다. 영적 어린아이 시절이었지만,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했다’ 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으로 그들을 다루십니다. 다루신 가장 큰 사건이 애굽에서 불러 내셨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특별한 능력과 강한 손으로 바로의 노예로 영원히 살 것 같은 히브리민족을 애굽에서 불러내십니다. 불러내신 이유는 사랑의 동기로 내 아들) 내 새끼를 불러 낸 것입니다. 호세아서를 읽는다면, 호세아서의 핵심은 하나님과 우리의 관계를 부부관계로 묘사합니다. 이러한 부부관계는 호세아 11장을 제외한, 호세아의 메시지 전체를 움직이는 중심요소입니다(호2:19-20). 남편 되시는 하나님께서는 신부의 몸값으로 비유된, 이른바 사랑(헤세드), 긍휼, 그리고 진실을 “담보로 하여” 이스라엘을 아내로 맞아들이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호세아 11장은 이전(1-10장)과 이후(12-13장)와는 구별되는, 그 자체로서 완결된 하나의 통일체로서, 그리고 전통적 신앙고백에 비해 볼 때, “완전히 새로운 모습”을 제시합니다. 즉 호세아는 여기서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계약관계를 “부부관계”로부터 “어버이-아들 관계”로 바꾸고 있습니다. 호세아 11장에서 갑자기 새롭게 등장한 “어버이-아들 관계”는 하나님이 스스로 자신의 마음을 고쳐 잡으시는 결정적인 하나님 이미지의 대 변화를 나타냅니다.
우리의 중심적 관심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의 관계를 “어버이-아들”의 관계로 그릴 때, 호세아가 11장의 핵심은 “그 하나님의 참 본질”은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출애굽 구원사건을 해석할 때, 그 사건은 하나님의 “사랑”이 동기가 되어(호11:1,4) 이루어진 사랑의 사건임과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의 아들을 “불러낸” 사건입니다. “새로운 급전환”을 알려주는 역할을 합니다. 즉 전통적으로 아들 이스라엘은 “음란한 사생아”(호2:4)요 “거역하는 아들”(사1:2)입니다. 호세아11장에서 그 상황은 전적으로 달라집니다. 그것은 처음부터 사랑의 선택으로 이루어진 “나의 아들(친 자식)”이었기 때문입니다(김이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친 자식으로 나의 피붙이로 여기십니다. 세상에서 유일한 한 사람으로 우리를 대하시고 사랑하시고 불러 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이스라엘을 어릴 때부터 사랑하시고 애굽에서 불러 주신 하나님께서 또 어떻게 우리를 사랑하며 사랑의 행동을 진행하고 계십니까?
Ⅱ. 하나님께서 우리를 아주 귀하고 아름답게 양육하고 계십니다(호11:3-4).
호세아 11장 3-4절은 11장 1절에 나타난 출애굽 사건의 역사적 연속인, “광야인도”를 전제로 한, 하나님의 사랑의 “양육” 행위를 묘사합니다. 이스라엘에게 출애굽사건을 통하여 나타내었던 하나님의 그 사랑이 오히려 이스라엘로부터 “버림을 받았다”는 것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념할 수 없는 아들을 향한 어버이의 사랑이 그러한 이해불가의 상황 속에서도 계속됩니다. 3-4절에 나타나는 6개의 주요 동사들의 연속적 배열도 또한 이 사실을 분명히 보여줍니다. 즉 “걸음을 가르친다” - “[팔로] 안고 다닌다” - “[병을] 고쳐 준다” - “줄로 붙들어 매어 이끈다” - “[멍에를] 벗겨내어 준다” - “음식을 먹여준다” 라는 동사는 하나님의 어버이로서의 사랑을 하나님의 출애굽 구원사 맥락 안에서 그려주고 있습니다. 새번역성경은 4절 끝 부분 “음식을 먹여준다”를 “가슴을 헤쳐 젖을 물렸다”라고 표현합니다(김이곤). 호세아 11장은 하나님께서 부성적 하나님이 아니라 모성적 사랑을 잘 보여 줍니다. 우리는 모두 어머니의 아픈 가슴을 통해서 태어났고 젖을 먹었고 사랑으로 자랐고 성장했습니다. 성경에는 모성적 하나님에 대한 묘사가 많이 나옵니다. 대표적인 것이 출애굽기 19장 4절입니다. 신명기 1장 31절에 의하면, 너희를 안으사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과거 예수님을 믿었을 때, 우리는 영적 갓난 아이였습니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속적으로 자라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친히 자라는데 주체가 되시는 분이십니다(고전3:7). 우리는 영적으로 스스로 성장할 수 없습니다. 오로지 하나님의 돌보심만이 우리를 자라도록 영적으로 성장하도록 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신령한 젖을 사모하려고 애써야 합니다(벧전2:2). 우리가 사모하지 않을 때 우리가 빨지 않을 때 대신 먹여 주지 않습니다. 영적 간절함을 소원해야 합니다. 사모해야 먹을 수 있습니다. 영적 양식인 영적 우유는 준비되어 있습니다. 아버지께서 준비하고 계십니다. 우리는 빨기만 하면 됩니다. 아주 쉽니다. 모든 것이 갖추어져 있습니다. 조금만 노력하며 조금만 입을 벌리고 힘을 쓰면 뭐든지 알 수 있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어떻게 했다고 말씀합니까? 그들이 다른 젖을 빨았다고 말씀합니다(호11:4-6). 다른 곳에서 생명수를 찾습니다. 생수의 근원을 버렸다고 말씀합니다(렘2:13). 하나님께서 내 아들을 애굽에서 부르시고 그들을 사랑의 줄로 잘 양육하였습니다. 그들이 아버지의 양육과 훈육을 거부하고 다른 것을 찾고자 하였습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갈 때마다 진정한 생명수를 찾고자 합니다. 진정한 생명수는 사람 안에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오직 생명수는 예수님 안에 있습니다. 아무것도 우리를 해갈시켜 주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님만이 우리의 영적 가뭄을 해갈시켜 줄 참된 비가 되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영적 안테나가 어디에 집중하고 있습니까(시편123:2)? 우리는 하나님의 양육을 받아야 성장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퇴보할 사람들이 아닙니다(히10:39).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경건에도 불구하고 고멜같은 행동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사랑은 변함이 없습니다. 우리의 하나님에 대한 불성실한 태도와 상관없이 하나님의 사랑은 변치 않습니다.
Ⅲ. 하나님께서는 마음속에 불붙는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십니다(호11:8-9).
1. 긍휼에 대한 정의.
항상 변심하는 인간을 향해서 변하지 않는 사랑으로 사랑의 고백을 하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사랑의 핵심 단어는 “긍휼”입니다. (1) 하나님의 본질은 “긍휼”입니다. (2) 그 “긍휼”은 진노와 멸망과 죽음의 심판을 이겨냅니다. (3) 바로 이 긍휼의 신이 하나님인 것은 그 하나님께서 “사람이 아니요 신이신 때문”입니다(김이곤).
2. 긍휼에 대해서 구체적인 설명.
(1) “긍휼” 본질은 호11:8-9절처럼 불쌍한 자를 불쌍히 여기지 않고는 못 견디는 속성(출33:19)이며, 끝내는 분노를 거두시고 심판을 거두시는 속성입니다(욘3:10). 트리블은 이 속성의 기원을 어머니의 자궁에서부터 찾습니다. 긍휼은 자신의 자궁에서 잉태하고 양육하고 내어놓은 그 자식에 대한 모성적 연민을 의미합니다. 어머니는 자기 자식을 어떤 경우에도 정죄하거나 버릴 수 없습니다.
(2) 자궁속성의 긍휼은 진노나, 멸망이나, 죽음의 심판을 모르고, 거기에는 “생명의 추구”만이 있습니다. 심판은 단지 하나님의 긍휼을 여는 “문”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긍휼의 신(출34:6)입니다. 하나님은 결코 우리의 죽음을 기뻐하지 않으시고 오직 우리가 살기만을 원하십니다(겔18:32).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죽는 자의 죽는 것은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노니 너희는 스스로 돌이키고 살지니라” 하나님의 진정한 공의는 실로 이 긍휼의 창조성 안에서만 그 참 의미를 가집니다.
(3) “분노하지 않는(분노를 거둘 수 있는) 긍휼속성”이 곧 신의 본질, 즉 신과 사람 사이의 근본적 차이점입니다. 긍휼은 자궁의 아픔을 통하여 생명창조의 기쁨을 창조하는 창조적 속성입니다. 모성적 사랑이 위대한 것은 그것이 창조적 속성을, 즉 자궁의 속성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거기에는 생명창조만이 있을 뿐이고 사랑과 용서만이 있을 뿐이며 멸망과 심판은 단지 새로운 생명창조의 거름이 될 뿐입니다(김이곤).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사랑은 변함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한 번도 우리 곁을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가 슬플 때나 기쁠 때나 인생의 가장 밑바닥에서 허우적거릴 때도 항상 우리 곁에서 도와주시고 함께 해 주신 좋으신 아버지입니다. 우리의 어리석은 행동에 상관없이 하나님께서는 항상 우리를 향한 불타는 사랑을 우리에게 부어 주시는 좋으신 어버이십니다.
결론// 하나님께서는 여전히 우리를 붙드십니다. 우리의 순종의 삶뿐만 아니라, 불순종한 삶에도 불구하고, 우리를 향한 사랑을 중단하시지 않고 항상 불타는 사랑으로 우리를 대하시는 아버지이십니다. 이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 하나님께서 영원토록 우리를 향한 사랑을 변개하시거나 바꾸시지 않으십니다. 십자가에 예수님을 내어 주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이심을 믿을 때, 우리는 세상을 능히 이길 것입니다. (설교요약 최병문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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