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일설교영상
최병문 목사 -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본문 말씀 : 여호수아 11:1-9
2021년 8월 15일 주일설교
제목: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만 여호수아 11장 1-9절 설교자:최병문목사
서론// C.S. Lewis가 지은 마지막 전투에 보면, 나니아 말기에 등불 황야 너머 멀리 서쪽에 있는 거대한 폭포 근처에 원숭이 한 마리가 살았습니다. 원숭이 중 가장 똑똑하고 못생기고 쪼글쪼글한 시프트라는 원숭이가 있었습니다. 단 하나의 친구이자 이웃인 퍼즐이라는 당나귀만 살고 있었습니다. 시프트는 퍼즐이 가져온 것 중에서 맛있는 것은 혼자 따 먹어 치우며 살았습니다. 시프트는 어느날 사냥군이 사냥하다 버린 사자머리를 줍습니다. 그는 그것을 잘 수선하여 아름다운 사자머리를 퍼즐의 머리에 씌워 줍니다. 시프트는 가짜 아슬란으로 거짓왕으로 삼고 나니아를 다스리게 됩니다. 그는 거짓으로 나니아 사람을 미혹하고 퍼즐을 통해서 다스리게 됩니다. 마지막이 되면 진실은 가리워지고 거짓이 진실인 것처럼 등장입니다. 거짓된 것들이 팽배합니다. 요한계시록 13장 11절에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옵니다. 겉모습은 새끼 양같이 두 뿔이 있는데, 용처럼 말합니다.
겉은 선하게 보이는데 말과 행동은 용처럼 말합니다. 거짓을 말합니다. 거짓은 마지막 시대의 표징입니다. 마지막 날이 다가오고 있습니다. 마지막 전쟁도 다가오고 있습니다. 여전히 우리는 보이지 않는 전쟁, 국제사회에서의 전쟁가운데 있습니다. 더 심각한 전쟁은 영적 전쟁입니다. 보이지 않는 영적 세계속에서 이루어지는 전쟁입니다. 언젠가는 전쟁의 끝이 올 것입니다. 모든 전쟁이 끝나고 평화의 시대가 도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마지막 전쟁은 아직 오지 않았습니다. 오늘은 여호수아서를 읽으면 마지막 가나안 전쟁이 나옵니다. 여호수아가 가나안을 입성 후 수많은 전쟁을 하였습니다. 오늘 전쟁은 가나안에서 벌어진 전쟁의 끝을 보여 줍니다. 마지막 전투라서 그런지 셀수 없는 많은 적들이 여호수아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오늘 이 본문을 통해서 세 가지 메세지를 살펴보고자 합니다.
Ⅰ. 우리는 우리의 힘로는 세상과의 전쟁에서 이길 수 없습니다(4절).
4절 그들이 그 모든 군대를 거느리고 나왔으니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같고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으며
여호수아서는 세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1-12장에서는 전쟁입니다. 13장에서 22장까지는 땅의 분배입니다. 23-24장은 우리 집은 여호와만 섬기겠다는 것으로 결론을 맺습니다. 앞장인 여호수아 10장에서는 가나안 남부 지역의 왕들과의 전쟁입니다. 11장 1절은 “하솔 왕 야빈이 이 소식을 듣고” 라는 말로 시작합니다. 하솔 왕 야빈은 여호수아가 가나안 남부지역을 공격하고 정복한 것을 들었습니다. 10절에 보면 하솔은 본래 그 모든 나라의 머리입니다. 그가 북방산지의 왕들을 모아서 여호수아와 전투하고자 메롬 물가에 모였습니다.
그런데 심각한 사실은 민중이 많아 해변의 수다한 모래 같다고 말합니다. 심지어 말과 병거도 심히 많았다고 말합니다. 군대의 숫자를 기록하는데, 너무 많아서 셀수가 없다고 말합니다. 말의 숫자도 많습니다. 병거의 숫자도 많았습니다. 이제껏 여호수아가 싸웠던 대적보다 훨씬 큰 전투를 해야 했습니다. 여호수아의 군대는 제한되어 있습니다. 말도 없습니다. 심지어 병거도 한 대도 없습니다. 사울왕 시대에도 칼을 가진 자가 사울과 요나단 밖에 없었습니다. 여호수아의 무기는 칼도 없는 아주 미약한 무기로 싸워야 했습니다. 여호수아가 싸워봐야 무참히 깨질 수 밖에 없는 전투입니다. 실패는 불을 보듯 뻔한 싸움입니다. 마지막 전투의 전투 결과는 기대가 되는 전투입니다
다윗과 골리앗과의 전투처럼 결과를 예측할 수 있는 전투입니다. 게임이 안되는 전투이지만, 다윗은 당당하게 말합니다. “너는 칼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만군의 여호와의 이름 곧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의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삼상17:45). 다윗은 승산이 없어 보이는 전쟁에서 당당하게 골리앗 앞으로 나아갑니다. 과거 우리 민족도 골리앗 같은 일본제국주의에 맞서서 독립운동을 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광복을 맞이하게 됩니다. 오늘은 광복절 76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민족주의역사학자들은 우리의 광복을 위한 독립군의 투쟁과 외교로 광복을 맞이했다고 말합니다. 1943년 11월에 열린 이집트 카이로 회담(윈스턴 처칠과 프랭클린 D. 루스벨트, 장제스)에서 우리나라만 독립을 약속하는 규정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조선 인민을 기만하는 예속에 유의하고 일본의 항복 후 최대한 빠른 시점에 조선이 독립하고 자유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고 결단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도우심이 있었기 때문에 광복이 찾아왔다고 믿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광복을 주셔야 우리는 광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세계의 역사 속에서 우리는 점과 같은 나라입니다. 우리는 일제의 식민지 상태에서 독립하기 위해서 수많은 투쟁과 외교와 분투를 펼쳤습니다. 대한광복군의 국내진공작전까지 계획했습니다. 그런데 갑작스런 일본의 항복으로 광복을 맞았습니다. 그것은 이 광복이 우리민족의 투쟁과 눈물과 외교의 결과가 아니라는 것을 말합니다. 오직 하나님께서 함께 하실 때 우리는 광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미군정이 임시정부인사들이 임시정부의 명목으로 국내에 들어오지 못하게 합니다. 개인자격으로 조선 땅에 오도록 합입니다. 나라가 없으면 얼마나 미약하고 비참한지 국제정치는 잘 보여줍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면 한순간에 모든 것을 뒤집어 놓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무언가를 하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세상은 자신의 노력과 의지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다고 말합니다. 세상은 적들과의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다고 믿습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세상을 이길수 있다고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우리의 주먹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의 지식을 믿지 않습니다. 우리의 관계를 믿지 않습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믿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나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찬송가 384장 2절은 이렇게 찬양합니다. 내 힘만 의지할때는 패할 수 밖에 없도다 힘 있는 장수 나와서 날 대신하여 싸우네 이 장수 누군가 주 예수 그리스도 만군의 주로다 당할자 누구랴 반드시 이기리로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능력을 항상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습니다. 우리 힘으로 진정으로 패할 수 밖에 없다는 것을 믿습니다. 우리가 얼마나 연약한 존재인지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조금만 잘하면 교만지수가 올라옵니다.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사람을 제일 싫어하십니다. 그래서 교만하면 금방 넘어지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한방에 무너질 수 있는 존재입니다. 조금만 우쭐해도 안됩니다. 조금만 빈틈을 보여도 안됩니다. 우리가 여호수아서를 읽어나갈 때 보십시오. 여리고 전투 후 아이성을 공격하고자 할 때 삼 천명으로 가능하다고 한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조금만 우쭐해지면 판단력이 흐려지는 것이 우리입니다. 우리는 양같은 사람들입니다. 양은 항상 목자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도 항상 목자가 필요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한치 앞도 볼 수 없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연약함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예수그리스도절대의존적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항상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갈려고 애써야 합니다(빌2:12).
우리는 항상 잘못된 착각에 빠져서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자수성가했다. 우리는 뭔가를 이루었다’ 고 생각해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우리 힘으로 무엇인가를 할 수 없는 무기력한 존재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해 주셔서 우리는 모든 것을 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포도나무에 붙은 가지같은 존재입니다. 가지는 얼마나 연약합니까! 바람이 휙불면 나뭇가지에서 떨어집니다. 태풍 앞에서 아무런 힘도 발휘할 수 없습니다.
코로나19 앞에서 우리는 어떤 존재였습니까! 우리의 신앙이 불타올랐습니까? 아니면 신앙이라는 이름도 유지하기 힘들었습니까? 우리는 마스크를 통과할 정도로 미세한 바이러스 앞에서도 우리의 신앙을 유지하기 힘들어하는 존재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신앙생활도 유지하기 힘들어하는 존재입니다. 우리의 힘으로 우리의 신앙을 불붙이기도 힘든 존재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실존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도와 주실 때 우리는 우리의 신앙을 유지할 수 있습니다. 미래에 더 큰 어려움과 고난이 우리에게 닥칠 수 있습니다. 이러한 고난을 이겨낼 수 있는 힘은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오직 하나님의 능력만이 모든 어려움을 능히 극복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약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크고 힘있고 못할 일 전혀 없으십니다. 우리는 우리의 힘으로 넘어갈 산이 없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우심을 날마다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늘 우리는 하나님께 붙들린 삶을 살아야 합니다.
Ⅱ. 우리는 늘 하나님께 붙들린 삶을 살아야 합니다(6절).
6절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그들을 인하여 두려워 말라 내일 이맘때에 내가 그들을 이스라엘 앞에 붙여 몰살시키리니 너는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사르라.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작전을 지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적들과 싸워야 할지 말씀합니다. 여호수아서에서 여호수아는 철저히 하나님의 종입니다. 여호수아서 1장 1절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죽은 후에 여호와께서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에게 일러 가라사대’ 라고 말씀하십니다. 모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신명기 34장 10절에 모세에 대해 말씀합니다. ‘그 후에는 이스라엘에 모세와 같은 선지자가 일어나지 못하였나니 모세는 여호와께 대면하여 아시던 자요.’. 이처럼 모세는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의 종에 불과한 존재입니다. 그는 대단한 인물이지만 종입니다. 그는 철저히 하나님의 종입니다. 여호수아는 어떻게 묘사됩니까?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라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종 모세의 시종 눈의 아들 여호수아입니다. 하나님의 종의 종입니다. 너무나 비천해서 종의 종입니다. 가장 비천한 존재입니다. 이것이 여호수아의 정체성입니다.
빌립보서에서 바울은 자신을 이렇게 표현합니다. 그리스도 예수의 종 바울이라고 말씀합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을 대단한 존재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그저 종이다 라고 말씀합니다. 종은 어떤 존재입니까? 주인이 시키는대로 하는 존재입니다. 조선시대를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 종의 두건을 벗기면 노비 노자가 이마에 새겨져 있는 사람입니다. 종은 단순합니다. 주인이 시키는 대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대단한 종은 없습니다. 종은 항상 주인의 손가락에 따라서 움직입니다(시123:2). 종은 동물이며 소모품입니다. 종은 시키는대로 해야 합니다. 누가복음 17장에 보면 종이 나옵니다. 열심히 밭에서 일하고 양을 치고 집에 왔다고 수고했으니 먹고 마시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만약 주인이 식사를 못하셨으면 식사시중을 들어야 합니다. 이것이 종의 인생입니다. 종은 주인의 명령에 따라서 살아가는 존재입니다.
여호수아도 철저히 하나님의 종입니다. 그는 종이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명령에 붙들려 살아야 했습니다. 그는 종이였기 때문에 자기 마음대로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자기 의견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았습니다. 그는 철저히 위로부터 내려지는 명령에 따라서 행동합니다. 여호수아도 위로부터 내려지는 명령에 따라서 움직이지 않았을 때가 있었습니다. 두 번 있었습니다. 첫 번째가 아이성전투입니다. 정탐들이 작은 성이니 다 올라가지 말고 3천명가량으로 공격하자고 하니 그대로 했다가 쓰라린 패배를 경험합니다. 그는 종이라는 정체성을 망각했고 하나님의 명령을 받지 않고 움직여서 실패를 했습니다. 종의 실패는 다른데 있지 않습니다. 주인의 명령을 듣지 않고 움직여서 실패합니다. 우리가 인생에서 실패를 경험하는 가장 큰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했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우리를 힘들게 하고 어렵게 합니다. 우리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가 언제입니까? 그때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지시한 명령을 거부하고 우리 마음대로 움직였을 때입니다. 우리도 인생을 살다보면 자녀들에게 조언을 합니다. 잘 받아들이는 자녀가 있고 자기 마음대로 하는 자녀가 있습니다. 분명히 이렇게 하면 넘어지는데 자기 마음대로 하다가 넘어집니다.
성공적인 인생은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기다릴 때 중요한 원리는 아주 단순합니다. 명령이 내리지 않을때는 움직이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명령을 천천히 내리실때가 있습니다. 아무리 대단한 하나님의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명령을 늦추실 때가 있습니다. 예레미야도 하나님의 명령이 10일 뒤에 내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합니다. 사울왕은 하나님의 명령이 내리지 않았는데 조급하여서 사무엘이 오기 전에 자신이 먼저 번제를 드립니다. 그로 인해서 사울왕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습니다. 사울의 실패원인은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께 묻지 않는데 있습니다(대상10:13-14). 이와 달리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여호수아는 달랐습니다. 그는 하나님의 종으로 하나님께 여쭈어 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말씀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특정한 사람에게만 말씀을 주시는 불공평한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사람에게 예수님의 십자가를 통해서 구원을 주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는 악인과 선인에게 햇빛을 비추어 주십니다(마5:45, 약1:17). 하나님께서는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불신자라도 열심히 공부하면 좋은 대학에 합격할 수 있습니다. 누구라도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하면 응답하시는 분이십니다. 여호수아만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며 살아갈 순 없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자녀는 부모의 음성을 들을 수 있고 부모의 말씀을 잘 경청할 수 있습니다.
6절처럼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 중 하나는 두려워 말라는 것입니다. 세상을 겁내지 말라는 것입니다. 자꾸 이 말씀을 하시냐 하면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가 기도할때마다 주시는 말씀은 믿어라는 것입니다. 두려워 말고 하나님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왜 나를 못믿냐? 라는 것입니다. 내가 함께 하는데 왜 두려워하고 미래가 무너져 내릴 것 같이 생각하냐는 것입니다. 두려워말라는 말에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 믿음을 가져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갈때마다 생각해야 될 것은 믿음입니다. 히브리서 11장 6절도 “믿음이 없으니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 지니라”. 하나님의 작전명령 중 하나는 믿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계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때마다 하나님께서 저 멀리 하늘에 계신 분이 아니라 오늘도 우리와 성령님으로 함께 하심을 믿으라는 것입니다. 지금은 믿을 때입니다. 종은 누구를 믿으며 살아갑니까? 주인입니다. 주인은 종을 책임져 줍니다. 종의 일평생은 주인에게 달려 있습니다.
두 번째 하나님의 작전명령은 하나님께서 승리를 주셨다는 말씀입니다. 왜 승리를 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모든 일에는 실패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셨는데 실패는 실패가 아닙니다. 우리의 실패도 실패같이 보입니다. 하나님의 관점에서 그것은 실패가 아닙니다. 과정입니다. 하나님 안에서 실패는 우리가 성장해가는 과정입니다. 우리는 과거에 하나님 없이 살아서 실패하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큰 그림 안에서 실패가 아니라 밑거름이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 안에서 살다가 넘어질 때도 있습니다.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패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승리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승리자입니다. 영원한 승리자입니다. ‘예수를 생각하고’ 라는 제목의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는 일의 실패에 실망치 않고 실망치 않고 그 성공에 뛰며 기뻐하지 않나니 예수를 생각하고 나는 나는 오직 영원한 승리자이기 때문이라 오직 영원한 승리자이기 때문이라 오직 영원한 승리자이기 때문이라’. 그러므로 언제나 하나님께서 가라고 하시면 가면 됩니다. 아무 말이 없으면 가만히 기다리면 됩니다. 가장 힘든 것이 기다림이지만 하나님 안에서 익어져 가는 과정입니다. 다듬어져가는 과정입니다. 성장해 가는 과정입니다. 준비되어지는 과정입니다.
Ⅲ. 우리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방해하는 장애물을 제거해야 합니다(9절).
9절 여호수아가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대로 행하여 그들의 말 뒷발의 힘줄을 끊고 불로 그 병거를 살랐더라
9절에 하나님의 명령대로 여호수아는 말 뒷발의 힘줄을 끊어 버립니다. 뿐만 아니라 병거를 불살라 버립니다. 우리가 영화나 사극을 볼 때 고대사회에서 말과 병거는 전쟁할 때 아주 좋은 무기가 됩니다. 보병으로 말을 탄 전사와 싸우는 것은 굉장히 불리합니다. 뿐만 아니라 병거를 탄 적과 싸운다는 것은 더더욱 어렵습니다.
그런데 그 좋은 말과 병거를 쓸모없게 만든다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습니까? 좋은 말과 병거를 갖고 있다는 것은 전쟁할 때 너무나 유리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가나안 전쟁할 때 한번도 병거를 가진 적도 말을 가진 적도 없습니다. 그들은 말과 병거가 있어서 전쟁에서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말과 병거보다 더 뛰어난 무기로 승리한 것입니다. 그럼에도 전쟁에서 이것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납니다. 말의 힘줄을 끊는다. 말을 사용하면 좋습니다. 말의 힘줄을 끊는다는 의미는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는 것을 끊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서 눈을 돌리게 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을 끊어버려야 합니다. 우리가 인생을 살다보면 의지하고 싶을 것이 한 두가지가 아닙니다.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으로부터 눈을 돌리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리처드 포스트는 세 가지를 말합니다(『돈·섹스·권력』).
1. 돈입니다.
인간은 돈에 너무 약합니다. 지금도 세상을 지배하는 것이 자본주의입니다. 집을 사고 땅을 사고 되팔아서 돈을 모읍니다. 주식을 합니다. 이것이 나쁜 것은 아닙니다. 나쁜 것은 돈의 노예가 되는 것입니다. 돈 앞에서 비굴해지는 것입니다. 돈에 붙들려 살아가는 태도입니다. 자본주의리는 종교개혁에서 나온 것입니다. 칼빈 선생님께서 만드신 것입니다. 열심히 땀을 흘려서 돈을 벌어서 가난한 자들을 돕는 것은 아주 성경적입니다. 신명기에서 소출한 후에 가난한 자들과 함께 나누라고 했습니다. 밭 네 귀퉁이에 이삭을 줍지 말라고 합니다. 가난한 자들을 위해서 남겨 두라고 말합니다. 돈은 우리가 신뢰할 수 밖에 없는 부분 중 하나입니다. 우리가 너무나 일상에 접하고 있습니다. 언제나 돈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말합니다. 돈을 사용하는 것은 나쁜 것이 아닙니다. 우리가 돈을 의지하지 않고 살 수 있는 비결은 아주 보람있게 사용하는 것입니다. 돈을 좋은 곳으로 선한 곳으로 흘려 보내는 것입니다.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이 돈이 필요한 곳으로 가도록 심는 것입니다. 그러면 돈을 의지하는 마음에서 자유를 누릴 수 있습니다. 돈은 우리를 흥하게도 하지만 우리를 쇠하게도 합니다. 돈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인생이 아니라 돈을 다스리는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을 의지하면서 살아갈 수 있습니다.
2. 성입니다.
요즘 핫이슈가 동성애입니다. 이제는 소수의 사람들만이 동성애에 대해서 반대합니다. 민주당은 계속적으로 동성애법을 만들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교회의 무관심으로 조만간에 동성애법은 통과될 것 같습니다. 동성애법이 무서운 것은 다음과 같습니다. 설교강단에서 동성애가 잘못되었다고 말하면, 이행강제금을 내야 합니다. 하한선이 5백만원입니다. 만약에 고치지 않으면 다음 달에도 이행강제금을 내야 합니다. 목회자의 잘못된 인식을 바꾸기 위해서 계속적으로 벌금이 나옵니다. 최근 도쿄올림픽이 끝났습니다. 올림픽에 역도에 트랜스젠더 선수가 참여하여서 실격을 했습니다. 캐나다 여자축구팀에 트랜스잰더가 참여하여 금메달을 획득했습니다. 성경은 성에 대해서 어떻게 말합니까? 일부일처제를 말합니다. 남자와 여자로 구성된 가정을 말합니다. 다양한 가정이 있다고 제도화시키려고 하고 있습니다. 성도 다양한 성이 있다고 말합니다. 성경은 남자와 여자와의 관계의 성만 말합니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성입니다. 남자와 남자와의 성을 죄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1장은 하나님을 거스리는 것이다라고 말합니다. 동성애는 병이며 죄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 성령의 도우심으로 고칠 수 있습니다. 우리 자녀들에게 바른 성교육을 해야 합니다. 성경에서 말하는 가정, 성이 무엇인지 가르쳐야 합니다. 한 남자와 한 여자가 사랑해서 결혼해서 갖는 성을 말해 주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정은 남자와 여자로 구성된 가정밖에 없다고 말해야 합니다. 우리는 지금 진리가 상대화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이같은 시대이지만 진리를 외쳐야 합니다. 주님 오실때까지 말해야 합니다. 결혼을 통해서 우리가 누리는 것은 단지 상대방을 섬기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상대방을 통해서 마음의 위로 정서적 안정, 욕구충족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섬기셨듯이 서로를 귀하고 여기고 아끼고 섬기는 것이 진정한 결혼의 목적입니다. 부부는 의지의 대상이 아니라 섬기는 대상이어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을 진정으로 의지하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에서 자유롭게 되는 비결입니다.
3. 권력입니다.
권력은 명예로 바꿀 수가 있습니다. 우리가 여러 사람들과 관계를 맺으면서 사귑니다. 사귀는 목적 중 하나는 어려움이 생길 때 도움을 받으려고 합니다. 변호사, 정치인, 의사를 알아 두면 좋습니다. 병이 들거나 재판이 생겼을 때, 여러 가지 어려움이 생길 때 그들은 진정으로 도움이 됩니다. 좋은 관계를 맺는 것은 중요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올무가 된다면 내려놓아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을 의지하는데 방해가 되는 것은 무엇이 있습니까? 이것이 너무나 중독성이 되어서 잘때도 생각나고 기도할때도 생각나고 예배드릴 때도 생각이 난다면 끊어버려야 합니다. 너무나 지나쳐서 마음이 그 곳에 가 있다면 끊어 버려야 합니다. 우리를 하나님으로부터 멀리하게 하는 모든 것들이 우상입니다. 김유신이 피곤해서 말이 항상 그 주점으로 갔습니다. 너무나 상심한 김유신을 사랑하는 말을 목을 쳐버렸습니다. 우리를 하나님과 멀어지게 하는 것이 있다면 끊어버려야 합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께 중독된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하나님 없이는 하루도 한순간도 살 수 없다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우리는 무용지물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는 장애물의 다리를 끊어 버리십시오. 그리고 예수님의 옷자락을 전심을 다해서 붙드십시오. 우리는 오직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만 살 수 있습니다. 늘 하나님께 붙들린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하나님보다 신뢰할 만 것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결론// 우리는 우리 힘으로는 세상을 이길 수 없습니다. 우리는 너무나 약한 사람들입니다. 그래서 언제나 하나님께 붙들린 인생을 살아가야 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지도와 지시를 받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종입니다. 종은 언제나 주인의 명령에 따라서 살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따라갈 때 장애물이 있습니다. 하나님과 가까이 하고 싶은데 가로막는 장애물이 있습니다. 그 장애물의 발목을 끊어 버려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 인생은 승리의 인생 복된 인생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여전히 전쟁중에 있습니다. 이같은 전쟁에서 승리할 수 있는 비결은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서 살아가는 것이며 하나님과의 관계를 막는 장애물을 끊어버릴 때입니다. 우리를 붙잡고 있는 장애물 지금 이 순간 끊어버리고 다시는 그것을 붙들어 즐거워 하는 인생이 아니라 슬퍼하는 복된 인생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께 중독된 인생으로 참된 하늘의 기쁨을 맛보시는 성도들 다 되시기 바랍니다. (설교요약: 최병문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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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1 | 얼굴로 복음을 전하는 사람 | 2025-04-06 | 사도행전 6:15,7:54-60 | 손호송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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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0 | 예수의 흔적 | 2025-03-23 | 갈라디아서 6:14-17 | 정영택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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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9 | 말씀에 의지하여 | 2025-03-16 | 누가복음 5:1-11 | 김환태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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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8 | 가장 위대한 꿈을 찾자! | 2025-03-09 | 사도행전 1:6-10 | 윤병수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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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7 | 품질보증(品質保證) | 2025-03-02 | 베드로전서 2:7-10 | 이동철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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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6 | 사십주강해(Vll):십계명(4):제7·8계명 | 2025-02-23 | 출애굽기 20:14-15 | 노창영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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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5 | 사십주강해(Vl):십계명(3):제5·6계명 | 2025-02-16 | 출애굽기 20:12-13 | 노창영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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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4 | 사십주강해(V):십계명(2):제3·4계명 | 2025-02-09 | 출애굽기 20:7-11 | 노창영 목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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