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8월 둘째주(08월11일-08월16일)금주가정예배
2025-08-03 16:20:17
방선영
조회수   30

오늘의 만나(가정예배)

 

0811일 찬송/ 53(9) 본문/ 예레미야40:1-16(1118) 제목:선택의 기로에서

인간은 태어나서 죽음때까지 많은 선택을 하며 살아갑니다. 무엇을 선택했느냐에 따라 삶의 방향이 결정되고 합니다. 선택이라는 것은 단순한 호불호문제가 아니라 그 사람의 가치관입니다. 본문은 선택의 기로에 놓인 예레미야의 모습을 보여주며 그의 선택에서 교훈을 얻습니다. 결박된 채 바벨론으로 끌려가던 예레미야는 느부갓네살의 도움으로 풀려나 바벨론과 고국 이스라엘 중 원하는 곳으로 갈 선택이 주어집니다. 예레미야는 폐허가 된 이스라엘에 남기를 선택합니다. 그는 바벨론으로 간다면 융숭한 대접에 편안한 삶이 보장되어 있음에도 아직 남겨진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아보기 위한 남겨진 자들에 대한 사명 때문이었습니다. 말씀을 따르는 사람은 인생의 목적을 하나님께 둡니다.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것을 선택합니다. 늘 선택의 기로에 서 있는 우리들입니다. 이 때 선택의 기준이 세상의 가치 기준에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께 있는지 돌아보고 하나님을 신뢰하고 말씀 따라 살기를 선택하여 평안한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0812일 찬송/ 326(536) 본문/ 예레미야41:1-18(1120) 제목:참된 지도자를 위해

유다가 바벨론에 의해 멸망을 당한 후 새로운 총독 그라댜가 세워져 유다에 남은 백성들이 평화를 찾는 듯하였으나 이스마엘 일당에 의해 죽임을 당하므로 다시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정의롭고 애국심이 강한 요하난이 총독 그다랴를 죽인 이스마엘 일당을 제거하기 위해 일어나자 백성들은 이스마엘을 버리고 요하난에게로 붙습니다. 그러나 요하난도 하나님의 뜻인 바벨론에 항복하지 않고 애굽으로 가버리는 인도주의적인 애국자에 불과하였습니다. 정의감이 강하고 용감한 지도자라도 하나님의 말씀대로 백성을 지도하지 않는다면 악인들과 마찬가지로 백성들을 불행하게 만들 뿐입니다. 때때로 반역자라는 혐의를 받는 일이 있더라도 민족적 굴욕을 당하는 것 같아도, 하나님의 방법이라면 바벨론에 항복하는 것과 같은 일이 형통한 길이 됩니다. 민족의 참된 지도자는 국가도 초월하고 혈통도 초월하여 오직 하나님 지상주의로 일관할 때 국가와 백성들을 바르게 인도하는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이 나라 지도자들이 당리당략을 뛰어넘어 하나님의 뜻을 분별할 수 있도록 기도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0813일 찬송/ 344(545) 본문/ 예레미야42:1-12(1121) 제목:성령의 능력으로

요하난과 유다 백성은 갈대아인에 대한 두려움과 애굽으로의 이주 문제로 혼란에 빠져 어디로 가야할지 막막하기만 하였습니다. 그래서 예레미야를 찾아와 기도를 요청하며 하나님의 뜻에 복종할 것을 전합니다.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뜻을 전하였으나 유다 백성들은 예레미야가 전하는 하나님의 말씀에 절대 순종하겠다고 약속하고 맹세하였음에도 맹세는 결국 지켜지지 않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순종도 우리의 결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도움이 없다면 불가능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의지와 결심까지도 하나님께 내어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예수님을 부인할 것이라고 예언하실 때 베드로는 결코 그런 일이 없을 것이며 죽는 데까지 따르겠다고 맹세합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자신의 맹세와 결단과 달리 예수님을 부인하였던 것은 순종이 자신의 의지와 결심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닌 것을 증명해 주고 있습니다. 지금 말씀에 순종하기로 다짐하셨습니까? 신약시대 성도들처럼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합니다.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해 달라고 간구하시기 바랍니다. 성령의 능력만이 우리의 믿음을 견고하게 해 주실 것입니다.

 

0814일 찬송/ 195(261) 본문/ 예레미야42:13-22(1122) 제목:순종할 준비된 신앙

바벨론의 공격에서 살아남은 유다 백성들은 이제 남은 자로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고민하며 하나님의 뜻을 묻습니다. ‘우리가 어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알려주십시오하나님의 뜻은 분명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기 말라, 이 땅에서 너희를 지켜주겠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바라던 것은 애굽으로 가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뜻을 구했지만 자기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경고하십니다. 그 길은 안전하지 않다고. 오늘 우리에게도 묻습니다. ‘내가 하나님의 뜻을 구할 때 정말 그 뜻을 순종할 준비가 되어있는가?’ 이미 마음 속에 결론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이 자신의 뜻에 맞춰지기를 구하지는 않는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무엇입니까? 그것은 순종입니다. 기도의 결과가 내 기대와 다르더라도 주의 뜻이 내 계획과 충돌이 되더라도 우리는 믿음으로 따라야 합니다. 그 길이 때로는 두렵고 불확실해 보여도 주님은 함께 하리라고 하신 약속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내 안에 내 힘을 빼고 하나님의 뜻을 구하여 순종하는 믿음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0815일 찬송/ 259(502) 본문/ 예레미야43:1-13(1123) 제목:하나님 중심 신앙

본문은 애굽으로 가지 말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이를 거부하고 애굽으로 가기를 단행하는 요하난과 그의 무리들을 향한 말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큰 돌을 가져다가 다바네스 바로의 집 어귀에 진흙으로 감추어 두므로 애굽의 멸망을 예언하도록 하십니다. 시편 139편의 고백과 같이 그 어디에도 피할 곳이 없고 계시지 않는 곳이 없으신 하나님, 여호와께서 나를 감찰하사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거할지라도, 음부에 자리를 펼치라도 그곳에 계셔서 알지 못하는 것이 없으시고 계시지 않은 곳이 없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유대에 남은 백성들은 안전한 나라, 안전한 처소를 찾아갈 것이 아니라 비록 위험한 험지에 있을지라도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기를 구하는 하나님 중심 신앙을 추구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중심으로 하여 살아가는 자들을 당신의 백성으로 삼으십니다. 그럼 하나님 중심의 신앙이란 어떤 것일까요? 하나님의 뜻을 최고의 가치로 삼는 신앙입니다. 갖가지 고난에도 하나님만을 붙드는 것입니다. 영원한 천국에 소망을 두는 신앙입니다. 하나님 중심 신앙으로 하나님 기쁨으로 사시는 모두가 되시기 바랍니다.

 

0816일 찬송/ 209(285) 본문/ 예레미야44:1-19(1124) 제목:목이 곧은 자

하나님은 살아계시기 때문에 말씀하시며 자기 백성에게 계시하십니다. 그러나 이방의 우상들은 생명이 없어 말을 못하며 사람과 교통할 수 없습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신을 택하여 섬기는 것은 어리석음의 극단(極端)입니다. 사람이 다른 일들에 있어서 깨달음도 있고 발전도 있으나 신앙에 있어서 하나님을 섬기지 않는 한 아무리 문명화 된 사람일지라도 알지 못하는 신을 섬기는 무지와 어리석음에 빠지게 됩니다. 인류가 범죄한 후 받은 벌로 참 하나님을 모르도록 되어있기 때문입니다. 애굽에 와서 거주하는 유다이 남은 백성이 저희 살던 유대 땅의 황폐함과 적막함을 보고도 그와 같은 죄를 범하는 것은 말할 수 없는 큰 죄악입니다. ‘자주 책망받으면서도 목이 곧은 사람은 갑자기 패망을 당하고 피하지 못하리라(29:1)’고 했습니다. 성령을 소멸치 말고 늘 깨어있지 않으면 굳은 심령이 되어 목이 곧아지는 것은 일 순간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성령님을 구하는 삶을 사시기 바랍니다.

(작성: 방선영목사)

 

 

댓글

댓글쓰기 권한이 없습니다.